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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 – 신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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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6,028회 작성일 20-10-0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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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 – 신소린

 

이규섭

 

무엇보다 우리 삶에 가깝고 중요한 것임에도 오히려 피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그래서 정작 마주해야 할 때에 당황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죽음은 철학적이고 사뭇 진지한 것으로 논의되기 십상이라, 그 결과 우리 삶과 조금은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추상적이고 경외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결국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 삶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가까운 이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마주하게 된다. 할머니의 치매로 엄마의 삶은 사뭇 달라진다. 작가는 할머니를 간병하는 엄마의 모습과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관혼상제나 교회의 7성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인간은 예부터 삶의 영역을 나누는 중요한 지점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면 그에 맞는 삶의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또 그렇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성인이 된 아이들이 조금씩 어른으로써의 행동과 태도를 알음알음 배워가듯이 인생의 한 고비를 넘어갈 때 마다 그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관문들이 모두 필연적인 것은 아니고 저마다 다른 방식을 띄기 마련이나, 죽음의 관문만큼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다. 사후의 세계를 믿던 믿지 않던 죽음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이고, 역대 아무도 그리고 앞으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유한성의 종착지인 것이다.

이토록 우리에게 필수적인 삶의 일부를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외면하거나, 먼 미래의 일로만 치부하고 있다. 예전보다는 나아져서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호스피스 제도나 안락사의 이야기가 종종 언급되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다들 문득 맞이한 죽음의 위협 앞에서 당황하고, 어찌할 줄 모르다가 결국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아직도 허다하다. 죽음이 삶에 피할수 없는 일부라한다면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 안에 죽음을 위한 것들 또한 포함되어야 할 것이고, 사회의 사각에 놓인 사람들은 그것을 쉽사리 잃게 될 것이다. 삶 속의 죽음을 논할 때 반드시 제도적인 이야기가 언급되는 까닭이다. 그들의 권리가 훼손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제도적인 도움이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 인간의 죽음은 주변인들이 얼마나 추가적인 희생을 해내는가에 따라 달려있으며, 그 희생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이 그것을 얼마나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지에 달려있다. 즉,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에 달려있다. 그 여유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모두여야 한다. 그러니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 점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저자가 진실을 조금 가린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인지 몰라도,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어려움들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해결된이다. 효도 포인트 제도라던지 하는 가족들의 많은 시도와 노력 끝에 얻어낸 것이라지만, 일반적인 가정에서 쉽사리 이루어 지기 어려운 것들이 아닌지, 조금은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지 생각하였다. 저자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구석구석마다 엄마의 노력과 가족들의 협조에 감사를 표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적인 여유와 물질적인 여유가 모두 있을 때에만 자주성을 많이 상실한 한 사람에게 온전히 인간다운 삶을 제공할 수 있다. 그마저도 할머니에 대한 사랑, 가족들의 협력과 서로에 대한 이해, 양보와 배려로 겨우 성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것이 얼마나 보편적이기 어려운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엄마와 더 많이 이야기 한다. 내가 죽거든 번거롭게 하지 말고, 봉안당도 필요 없다는 이야기며. 그러면 수시로 접속해서 볼 수 있는 온라인 봉안당은 어떻겠냐는 이야기며. 시신 기증을 할지 장기 기증을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이어나간다. 그렇게 농담처럼 던져져 꼬리에 꼬리를 문 죽음에 관한 수다는 그 가벼운 분위기만큼 더 다채롭게 이야기 되고, 그래서 훗날 사뭇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생각해 미래를 준비하고, 동시에 개인의 죽음이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주변 사람들과 함께 준비해 나간다.

열정적인 삶이란 죽음과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지고, 그래서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살아 있기도 벅찬데 세상 다산 것 마냥 죽음을 생각하는 젊은 놈의 이미지는 얼마나 한심스럽나. 하지만 가장 열정적인 삶을 사는 이들은 동시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 현실적인 인지를 하고 있는 이들 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거나 삶에 의욕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유한성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연설 중에 죽음에 관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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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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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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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hungry, Stay foolish”로 유명한 그 연설이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유한한 삶을 더 알차게 쓸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꼭 잡스와 같이 성취를 위한 동기부여로만 작용하는 작은 의미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보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불행한 노후를 맞이하는 노인의 수도 늘고 있다. 병상에서 혹은 허술한 요양 시설에서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주변인들을 보면서 “자다가 편하게 죽는 것”이 소원인 세상이다. 건강한 노년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가하는 이유다. 죽음을 맞이하는 삶의 과정 또한 삶을 즐기는 행위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 죽음은 갑자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올 수 있는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나는 젊고, 그래서 당장 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말 없는 이야기는 얼마나 매력이 없는가. 성취를 위한 목표 설정이 아닌, 삶이라는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지의 문제다. 무엇보다 언젠가 필연적으로 찾아올 내 주변인들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해둘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인사가 혼돈과 당황 속에 휘리릭 지나가서는 안될 노릇아닌가. 그리고 결국 모든 이들이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있으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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