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죽음의 수용소에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5,928회 작성일 20-09-05 21:37

본문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던 작년에는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갔었다. 도시에 대한 인상은 ‘조용함’ ‘활기참이 없음’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꾸준함’, ‘친절함’ 이었다. 보통은 음식이 맛있어서 기억에 남기 마련이지만 거기서는 음식이 맛있기 이전에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이 기억에 남았다. (물론 주방이 훤히 보이는 오픈 키친 형태가 많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음식도 맛있게 느껴졌다. 정확히는, 이런 정성스런 음식을 먹는다면 맛은 좀 내 취향이 아니어도 상관없겠구나 싶었다. 밤이 되면 포장마차들이 문을 열었다. 외부에 간이로 설치하는 포장마차가 이렇게나 깔끔할 수 있구나 놀랍기도 했다. 포장마차를 옮기려 했지만 새로 찾아간 곳은 마감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매일 하는 마감 청소가 1년만의 대청소 같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깐깐하게 청소를 하다가 손님에게 미안한 미소를 지어주는 모습은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후쿠오카는 호화롭고 화려한 도시는 아니었어도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신의 행동을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에, 여행에서 잠시나마 마주쳤던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았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으면서 작년 여행이 문득 생각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해 4개의 수용소를 오가며 죽음이라는 것을 죽지 않았어도 더 뼈저리게 느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의 기록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삶의 의지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어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수감자들의 정신적인 치료를 통해 다시금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 모든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우리는 이미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하지만, 이 책은 실제 수감자의 기록이다. 또한 ‘실질적 죽음’에서 결국 살아남아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수감자들의 정신적 원인을 찾기 위해 고찰한 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감자들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정신적인 분열, 붕괴가 더 깊숙이 와 닿았다.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일시적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Finis 라는 라틴어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 혹은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115 pp.

 

그는 내면이 붕괴되는 여러 수감자를 보았지만, (실제로 내면이 붕괴된 수감자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죽음을 맞이했다.) 정신과 의사 답게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이 고통은 무엇인가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한 고통 이기를 멈춘다. 그리고는 새로운 방향을 내어주기도 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 -125 pp.

 

이 문장은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가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의문이 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우리 삶을 어느정도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거대한 운명 이라던가 큰 힘 앞에서 산산이 조각나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빅터 프랭클 역시 정신과 의사였지만 단숨에 발가벗겨진 수감자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히 삶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삶은 우리에게 계속 살아내라고 요구한다.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는 살아낼 의미를 계속해서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 의미가 깎이고 베여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야한다. 당장 화장터에 끌려갈 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는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용모를 단정히 했다. 그러면서 의미를 계속 만들어내었다. 더이상 만들 의미가 없다면 이 지옥같은 생활이 끝나고 대학에서 강연을 하는 자신을 그리기도 했다. 만들어낸 의미가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너무나도 다르다. 그 의미는 거대한 운명과 시련 앞에 바뀔 수도 없어질 수도 있다. 정신과 의사가 수감자가 되었다. 이미 그가 꿈꿔왔던 인생의 의미를 얻기엔 틀렸다. 하지만 그 운명에 맞게 다시 의미를 찾아내었다. 하루 안에서 의욕적으로 살아낼 이유를 기어코 찾아내며 버텨냈다.


삶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살아내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의미를 견고히 완성 시킬 필요가 있다. 힘들때마다 그것이 좋은 지침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