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한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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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4학년 1학기, 교양수업 수강신청에 실패해서 소위 ‘교양 거지’ 신세가 되기 직전이었다. 새벽에 <고전 라틴어>라는 수업에 자리가 남은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바로 ‘수강 신청’ 버튼을 눌렀다. 당장 다음 학기면 졸업이었기에 그 수업의 교수님 강의는 어떤지, 과제는 많은지 등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라틴어와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야이 미국의 노예들아!!” “야이 브리태니카의 노예들아!!”
수업 내내 수시로 들리던 교수님의 장난섞인 고함이다. 실제로 라틴어는 처음 배우게 되면 잠시 발음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라틴어 역시 알파벳을 사용하지만, 알파벳 ‘V’의 발음이 영어의 ‘W’ 발음에 대응된다. 서울대학교에서 사용하는, “Veritas lux mea”는 사실, <’웨’리타스 룩스 메아>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또한, 라틴어에서 단어 중 ‘최하급’을 뜻하는 ‘minimum’은 고전 라틴어나 중세 교회 라틴어 식으로는 <미니뭄>이라고 발음하는게 옳지만, 영어 강의의 부작용(?)인지 영어에 너무 익숙해진 학생들은 무심결에 <미니멈>이라고 발음하곤 했다.
이렇게 한 고비를 넘기면, 진정한 문법의 시련은 이제 시작이다. 우선 명사마다 문법적 ‘성’이 있는데, 이것이 딱히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단어를 외울 때마다 같이 외우는 수밖에 없다. 또한 명사마다 단수/복수 형태가 있고, 각 형태마다 6개의 ‘격’이 존재하는 이른바 ‘격변화’를 하는데 이 격변화의 유형을 크게 5가지로 나눈다. 예를 들면, ‘소녀’를 뜻하는 라틴어 puella의 격변화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puella, ae (1변화 명사), f (여성)
puella (단수, 주격. “소녀가”) / puellae (단수, 소유격, “소녀의”) / puellae (단수, 여격, “소녀에게)
puellam (단수, 대격, “소녀를”) / puella (단수, 탈격, “소녀로”, “소녀로부터” 등등) / puella (단수, 호격, “소녀야”)
puellae (복수, 주격, “소녀들이”) / puellarum (복수, 소유격, “소녀들의”) / puellis (복수, 여격, “소녀들에게”)
puellas (복수, 목적격, “소녀들을”) / puellis (복수, 탈격, “소녀들로”, “소녀들로부터” 등등) / puellae (복수, 호격, “소녀들아”)
비단 명사 뿐만 아니라 형용사도 명사처럼 격변화를 하며, 그 격변화 역시 모두 외워야 한다. 또한 하나의 형용사는 문법적 성에 따라서 3가지 형태를 가진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이라는 뜻의 pulcher는, 남성 / 여성 / 중성 순서로 pulcher, pulchra, pulchrum 이다. 형용사는 수식하는 명사의 문법적 성에 따라서 그에 합당한 형태를 취해야 하며, 각각의 격변화 역시 모두 익히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 “아름다운 소녀야” 라고 부르고 싶거든, Pulcher의 여성 단수 호격인 “pulchera”를 사용해 “pulchera puella!” 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동사의 경우는 더 심각해지는데, 각 동사는 문법적 쓰임에 따라서 크게 3가지 정도의 변화 유형이 있으며 (물론 예외는 있다.) 각 유형마다 직설법, 능동형, 수동형, 과거, 현재, 주어의 단수/복수 등에 따라서 최소 120가지 이상의 변화표를 익혀야 한다.
서론이 다소 길어졌는데, 이렇다 보니 사실 라틴어를 ‘각 잡고’ 공부하는 것은 매우 고달픈 일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교하게 짜여진 문법 체계와 뭔가 있어 보이는 언어 같다는 느낌 때문에 라틴어에 빠져드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 아마 나 역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했다면 취미로 계속 라틴어를 공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공부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읽어보면 라틴어에 대한 내용보다는 라틴어 격언 하나를 주제구로 삼고 그것에 관련된 인문학적 담론을 나누는, 매우 따뜻한 수업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여기에 관련 내용 중 일부를 공유하려고 한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으로만 믿게나.”
- 호라티우스 (남성, 시인, B.C 65 ~ B.C. 8)
“Carpe diem!” 이 책의 챕터 중 하나이다. 흔히 “현재를 잡아라 (Seize the day)”라고 알려진 문구이다. 문장을 직역하면, “Carpe”는 “잡다, 포획하다” 라는 뜻을 가진 Carpo라는 동사의 2인칭 현재형 명령법, 즉 “너는 잡아라”라는 의미이다. ‘diem’이란, ‘하루’ 라는 뜻의 dies, diei (5변화 명사), m (남성)의 단수 목적격으로 ‘하루를’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즉 ‘하루를 잡아라’, ‘오늘을 붙잡아라’ 라고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위에 인용한,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 ‘대시인’이라고 불리던 호라티우스가 남긴 구절의 일부분이다. 오지 않을 지도 모를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행복과 거리가 먼 것이므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오늘만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기에 시인은 말했다.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으로만” 믿으라고.
“Non scholae sed vitae diciumus”
“우리는 학교(지식)을 위해서가 아닌,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 본문 Chapter 4의 주제구.
시중에 라틴어를 공부할 수 있는 대표적이자 얼마 안 되는 교재 중 하나인 <Oxford Latin Course>라는 책은, 위에 나열한 라틴어 문법이나 지식 등을 나열하면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위에서 봤듯이 안 그래도 난해하고 고상한 언어인데 더욱 더 씹어 삼키기 어려워질 테니. 실제 그리스 신화의 구절이나, 라틴어 법전, 혹은 라틴어 격언 등을 주제구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 식이다. 언어는 그 자체의 학습을 통해 특정 문화권에서의 생활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나, 바티칸 정도에서나 쓰일 법한 사어인 라틴어를 공부하는 목적을 여기서 찾기는 힘들다. 오히려, 언어를 자신 표현의 수단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툴이라고 본다면 여기서 라틴어 공부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상당수의 유럽 고전/법전이 라틴어로 쓰여 있고, 이러한 창문을 통해 과거 시대의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현재와 미래에 대한 좀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언젠가 잠시 시간을 내어서, 내 책장 어딘가에 먼지가 묻어 있을 라틴어 교재를 펼쳐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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