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복(飮福) – 강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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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飮福) – 강화길
이규섭
매일매일 양극화를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갈등의 연속이라지만, 그것도 갈등의 해소가 뒤따를 때의 이야기라 피곤하기 그지 없는 세상이다. 세대간의 갈등, 남녀간의 갈등, 빈부의 갈등, 인종 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갈등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영역에서 더욱 그 골이 깊어진다. 오늘날은 모순적이게도, 우리의 가장 마음이 편해야 할 가족 모임의 때에 세상 모든 갈등이 집에 모여든다.
언젠가부터 명절은 피하고 싶은 날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해서, 어머니들은 평소의 곱절은 되는 가사노동을 피해서 명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지만,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불평등 구조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은 여전할 것이다. 그 정도가 옛날과 비교하여서는 훨씬 완화 되고 개선 되었다지만, 오늘날 성숙된 시민의식에 비해서는 원시적인 형태가 여전히 잔재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소설은 제삿날 벌어진 일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족이 이러한 과도기를 거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시부모는 시대의 변화에 포용적인 유한 사람들이다. 결혼식을 작게 올린다던지 하는 관습에 벗어나는 일들에 흔쾌히 허락해주신 분들이라, 오히려 사사건건 방해가 된 건 주인공의 부모님이었다. 허나 그러한 시댁에 방문한 제사일에 주인공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비밀이 있었다. 남편의 할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후, 전쟁 후유증으로 망가져 버려 아내인 할머니와 며느리인 시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했다. 할아버지가 좋아했다던 제사상에 올라간 기묘한 토마토 고기 조림은 이를 상징한다. 베트남도 어느 외국의 음식도 아니라는 기묘한 음식을 가장 잘 먹는 건 주인공의 남편이다. 남편이 말한 것과는 사뭇 다른 사람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한다. 이러한 긴장감이 지속되던 차에,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갑자기 이성을 잃고 숟가락을 던지며 난동을 부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된다.
사건이 일단락 되고 주인공은 시어머니에게 장문의 문자를 받는다. 시어머니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계속 제사를 지내며 그 집안의 며느리로써 살아가는 것을 담보로 하여, 시아버지로부터 아들의 삶에 절대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아들인 남편은 절대 알지 못하게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는 깨닫는다. 이 가족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었는지, 그 고생을 한 시어머니는 어째서 해가 갈수록 더 지극 정성으로 제사를 올리는지, 고모님의 성질머리를 두고서 왜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지, 그리고 왜 시아버지는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뿐인지를 말이다. 그 집의 진짜 악역은 주인공의 처음 생각과 다르게 자신의 남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허허 웃어 넘길 뿐인 그 남자가, 할아버지와 똑 닮은 사람, 그러나 동시에 주인공이 사랑하는 그 모습을 품은 그 남자가 이 집안의 분위기를 형성한 악역이었던 것임을 주인공은 깨닫는다.
‘정우는 다 모르게 해 줘.’
그러니 이 남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렇게 이루어진 균형이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괴롭게 만들었고, 고모는 그 난리를 피워도 건드릴 수 없는 할머니의 유일한 이해자 였다. 그래서 그 딸은 멋진 사람이어서 가족 모임에 고개를 내미는 일도 없었고, 그제서야 주인공은 자신이 왜 외가에 자주 가지 않았는지, 고모님과 엄마를 겹쳐 보았다. 시어머니는 이제 제사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의 흐름에 맡겨서는 생전에 변화를 보기 어려우니 형태를 부수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요즘엔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이 줄었다. 가정 내 갈등의 주범일 뿐더러, 그 수고로움에 비해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는 점에서 이는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 제사를 비롯한 가정 내 전통들의 본질은 ‘가족애’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간의 관계가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는 시대에, 어찌보면 비논리적이고 운명론적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가 없는 강한 유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따라서 그 본질을 생각한다면 제사와 명절의 불편한 공기는 분명 이상한 것이다.
음복은 제사를 지내 조상을 기리고 난 뒤, 남은 음식을 가족들이 나누는 행위이다. 우리 집에서는 제사상에 올리는 술에 한정해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지만, 음식 전반에 대한 의미로도 활용되는 모양이다. 이렇든 저렇든 세상을 떠난 조상에게 예를 올리면 조상은 그것을 복의 형태로 남겨놓고 가고, 현실의 자손들이 이를 나누며 안녕을 기리는 좋은 의미임에는 차이가 없다. 허나 토마토 고기 조림은 월남에서 돌아온 귀신이 먹어야만 이 집안을 떠나주는 제물이었다. 복을 남기고 가는 조상신이 아니라 제발 사라져 줬으면 하는 귀신이 되어버린 사람은 그렇게 제물을 남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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