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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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전홍진 저
얼마 전 나는 대전에 있는 한 심리 상담 치료소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나 학부생 때는 심리 감정 결과를 본인 나름대로 읽고 이해한 것에 불과했었다면 이번엔 좀 달랐다. 달랐으면 해서 찾아간 것이긴 하지만. 상담 치료 전문가와 약 6회에 걸쳐 내 삶의 전반적인 진료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장롱 깊숙이 십 수 년간 박혀있던 예물단지처럼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내 기억들을 들추어 보았다. 나는 그저 이야기 상대가 필요해서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서 비롯된 불안감은 꽤 오랜 시간동안 날 옥죄어 왔다. 안정되지 못한 심리는 내 태도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렀고 나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조차 덩달아 그 뾰족한 가시를 건드릴까 불안해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가깝게는 결혼, 멀게는 내 꿈의 실현까지, 이정표 없는 깜깜한 시골 도로를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달려야 한단 말인가.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사람들로부터 예민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나는 잠에 깊게 들지 못하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금방 눈이 떠진다. 그럴 때면 그 소리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거나 때론 원망하며 다시금 고요해진 방 안에서 잠을 재청한다. 하지만 쉽사리 잠은 다시 오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 그새 한두 시간이 지나있다. 이런 내 수면습관은 다른 여타 심리와는 별개로 생각했었다. 다만 나는 남들과는 달리 조금 예민할 뿐이니 몸과 마음이 조금 더 지친 상태에서는 자연스럽게 깊은 잠에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모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이제껏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려 하는 길을 훤히 지켜보는 전지자가 보기엔 인과관계에 있는 아주 단순한 현상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과거의 나를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되새기며 일관된 사고와 행동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독하게 말하자면 미래를 계획한단 핑계로 과거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나는 공부를 싫어했다. 방과 후 빼곡하게 채워진 내 학원스케줄은 하교시간이 다가올수록 날 불안하게 했다. 나는 학원에 빠지고 친구들과 농구를 하 는 게 훨씬 즐거웠다. 부모님은 날 설득하기보다는 호통과 꾸중으로 날 바꾸려 하셨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정말 우수한 환경에서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가고 있지만 마음 깊숙한 어디에서 나는 그 시절의 심리가 남아있나 보다. 머리가 굵어진 지금에야 효도는 기본 덕목이기에 부모님께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심리 분석 결과, 나는 부모님을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home sweet home을 외치지만 가슴은 부모님과 가정으로부터 따뜻함을 전혀 못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남자란 존재, 가정의 의미 등에 대해 감성적인 평가를 전혀 내놓지 않고 있었다. ‘과묵히 외로움을 견디는 아버지’, ‘자녀를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마다않는 어머니’, ‘형/누나의 그늘에 항상 가려진 동생’, ‘모두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 있는 가정’등 내 가슴은 매몰차면서 동시에 애처롭기까지 했다.
예민한 사람들은 주변 시그널에 너무 민감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소리, 빛 등 물리적인 시그널 이외에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행동 등의 입력에서 이들은 표면적인 의미 그 이상의 것들을 상상하느라 바쁘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또는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말, 행동, 현상이 객관적으로는 자신과 무관한데도 스스로 연결 고리를 찾고 이를 사실이라고 여기게 된다. 관계사고가 있으면 자신만의 상상 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부정적으로 혹은 피해의식을 갖고 현실을 해석하게 되어 예민해지며, 우울이나 불안이 심해질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이곳저곳에 분산하고 또 낭비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빨리 지친다는 특징 또한 가진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로 집중력을 쉽게 잃는다. 이는 다시금 상상과 행동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을 야기한다. 상담 치료 전문가 선생님이 해주셨던 여러 말들 중 하나는 아직까지도 내 마음을 후벼 팔 정도로 예리한 칼날 같으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보듬어주는 깃털 같기도 하다.
이제껏 정말 힘들었겠구나. 고생했어.
여러 조언들 중 하나는 이미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남들과 같이 가정에서 따뜻함 느끼기 프로젝트. 나는 항상 경상도 남자라 가족과도 무덤덤하게 지내는 걸 마치 자랑으로 일삼아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화 통화를 할 때 살가운 말들을 많이 하려 노력한다. 이제는 더 이상 나에 대한 부모님의 일방적인 안부 전화보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서 내가 거는 전화가 더 많아졌다. 시간이 나면 집에 가려하고 별일이 없더라도 함께 지내려한다. 그러자 가족이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 부모님은 내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나도 부모님이 미워서 반항한 것이 아니며 동생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왔고 무엇보다 아버지, 어머니는 외롭거나 힘들어도 의무감에 희생을 자처한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따뜻한 감정이 조금 생기는 듯하다.
인간의 뇌는 완전히 만들어진 상태로 태어나는 게 아니며 평생에 걸쳐 수정되고 변형된다. 노인이 되어서도 건강한 뇌의 해마는 수많은 새로운 신경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새로운 신경의 연결망을 만든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가족 관계는 평생에 걸쳐 예민성을 줄이는데 중요하다. 물론 어릴 때 그런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까닭은 없다. 우리 뇌는 현재의 좋은 기억을 통해 과거를 극복하는 새로운 신경망을 형성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은 과거대로 의미가 있고 간직해야 하지만 그 기억에서 나오는 감정에 현재의 내가 휘둘리면 안 된다.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무의식적으로 날 가두었던 과거의 감정은 차차 잊어가자. 가슴이 따뜻함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순간 날 옥죄었던 그 불안감 역시도 자취를 감출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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