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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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저
4명의 사람이 있다. 그런데 케이크는 세 조각뿐이다. 당신이라면 이 세 조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참고로 케이크는 여기서 더 조각낼 수 없다. 아마 대부분 1명이 케이크를 양보하고(양보라고 하지만 실은 포기에 가까운), 3명이 세 조각을 먹는 결정을 할 것이다. 케이크를 양보하는 1명은 내가 아닐 거라 믿으며. 하지만 영화 <꿈의 제인> 속 주인공 제인의 대답 앞에서 우리의 얄팍한 이기심은 초라해지고 만다.
“케익이 몇 조각 남았니? 세 조각이 남았지. 니네가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넷 중 하나라도 케익을 포기하게 만들어선 안 되는 거야. 차라리 셋 다 안 먹고 말아야지.”
제인이 말하는 ‘인간이 시시해지지 않는 법’은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모두가 케이크를 나눠먹는 것이다. ‘시시하지 않은’ 인간은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는다.
최근 중국 당국은 결코 달콤하지 않은 문제에 직면했다. 세계 최대 수력발전 댐 싼샤댐이 붕괴 위험에 처한 것이다. 중국 남부 지역에 두 달가량 이어진 폭우로 싼샤댐의 수위가 최고점에 임박하며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싼샤댐이 붕괴될 경우, 싼샤댐이 있는 양쯔강 하류의 상하이 지역에 대홍수는 물론, 이 지역에 밀집해 있는 9기의 원자력발전소까지 영향을 받아 중국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싼샤댐의 7개 수문을 모두 개방하여 싼샤댐의 수위를 낮추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물이 양쯔강 하류로 모이며 하류에 위치한 지역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싼샤댐에서 방류한 윗물이 누르고, 집중호우로 내린 아랫물이 또 치받는 형국인 것이다. 댐의 방수량을 늘리면 하류 지역 피해가 늘어나고, 방수량을 줄이면 상류의 피해가 늘어나기에 당국은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고심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처럼 도덕적 딜레마를 던져주며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해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시시한 세상에서 적어도 누군가의 불행을 외면하는 시시한 인간은 되지 말자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케이크를 먹지 못하는 1명이 내가 될 수도 있음을, 시시한 세상에서 케이크를 먹지 못해 불행한 하루를 보낸 누군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말하는것이다. 3명만 케이크를 먹는 세상 ‘참 시시하다’고.
요즘 우리나라는 긴 장마와 폭우에 시달리고 있다. 해마다 지나가던 장마라고 생각했지만 장마는 부산부터 시작하여 수도권까지 전국 곳곳을 헤집어 놓았다. 7월 23일 밤, 부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물폭탄’이 쏟아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저지대에서 차량이 물에 잠겼고 급기야 사람들까지 물난리에 목숨을 잃었다. 부산역 인근 지하차도에 순식간에 들이닥친 흙탕물은 세 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엄마는 구출됐지만 딸은 엄마의 손을 놓치면서 세상과 작별을 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부산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놀란 시민들의 눈은 텔레비전으로 향했지만, 지상파 그 어디에도 부산은 없었다. 이후 수도권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 폭우가 쏟아지자 바로 재난 방송을 편성한 것과는 대비되는 태도다.
이번 폭우 이후 부산과 지방 시민들은 지방의 고통을 외면한, 재난 주관 방송사이자 공영방송 KBS에 수신료를 내야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수도권 인구수가 비수도권 인구수를 넘어서며 수도권 집중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지방 소외 현상 역시 심화되고 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은 지방도 분명 사람이 사는 곳이며, 각자 삶의 터전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각자 속해 있는 사회에 물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속해 있지 않은 사회나 지역에 관해서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마음 속 깊이 공감하기는 어렵다. 쌴샤댐의 방류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 방류를 하지 않을 경우, 쌴샤댐은 댐의 수용량을 초과하게 되어 붕괴될 것이다. 누군가는 싼샤댐의 방류 자체를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하류 지역이 입는 피해와 고통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다. 부산 폭우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예시를 든 것은 부산이지만 비단 부산만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서 부산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수도권을 제외한 비수도권 중 하나의 사례로서 부산을 언급하였다. 이번 폭우로 피해를 입은 부산, 대전 그 외 언급하지 못한 비수도권 주민들의 아픔도 한 번쯤 떠올려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서로 연대하고 있음을 그들이 알 수 있다면 그들의 불행에 아주 작은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제인의 말처럼 시시한 세상에 인간마저 시시해지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제인은 클럽 ‘뉴월드’에서 노래를 부르기 전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어쩌다 이렇게 한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중략)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여기 뉴월드에서.”
어쩌다 한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누구도 혼잣말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곳. 서로의 손을 놓치 않는 곳. 우리가 살아야 할 뉴월드, 우리의 신세계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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