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 수용소 : 제2차 세계대전 중국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기록한 인간 실존 보고서 - 랭던 길키 지음
페이지 정보

본문
군 시절, 나는 헌병대대 소속이었다. 물론, 타고난 체격(?) 덕분에 흔히들 떠올리는 키 크고 잘생긴 헌병들은 되지 못하고, 통제실(컴퓨터로 비유하면 ‘CPU’정도가 적당하겠다. 헌병대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역할을 했으니.) 작전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전시 상황에서 헌병의 주된 임무는, 민간인 구역 통제와 점령지 질서 유지, 그리고 포로수용소 관리 등이 있다. 군생활에 대한 내 기억 한 편에는,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포로수용소 관리 훈련을 하면서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던 장면이 뜨문뜨문 존재한다.
인류 역사를 비추어보면, 전쟁 포로를 대우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포로에 관한 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제네바 조약’의 제15조항 “포로를 억류하는 국가는, 무상으로 포로에 대한 급양을 제공하고 또한 그들의 건강상태상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여야 한다.” 이라고 본다. 그러나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현실적으로 전쟁 와중에 이것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포로의 인권을 지킨다고 하기에는, 애초에 전쟁 자체가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구 일본군 같은 소위 ‘막장 군대’에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전투 중에 전사하는 것이 나을지도.
이 책은, 세계대전 당시 중국 북경의 연경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랭던 길키’라는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군에 의해 산둥에 있는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고 나서 풀려나기까지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사실 국제법상으로 ‘포로’란 적국의 ‘무장한 군인’을 억류한 경우에 해당하기에 군인 신분이 아니었던 길키를 포함한 여러 서양 민간인을 포로수용소에 억류한 일본군은 이미 그 막장성을 벌써부터 책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 지는 모르겠으나, 책에 묘사된 수용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소위 ‘죽음의 수용소’에 비하면 그나마 사람 대우를 조금은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처음 수용자들이 수용소 시설에 도착했을 때는 여기가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가 싶을 정도로 불쾌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보급품은 형편없었고, 식량 또한 한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수용소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때론 정치력을 발휘하고, 때론 공학적 지식을 이용하고, 각자 자신들의 살아옴에 기댄 배경 지식을 토대로 그들만의 사회를 구축해나갔다.
“방금 엄청난 소식을 들었어요! 와서 이것 좀 읽어봐요!.”
그 순간, 나는 여선교사의 중국인 친구들이 우리가 아직 듣지 못한 연합군의 승리 소식을 전했다고 짐작했다.
그래서 단숨에 걸음을 멈추고 다급한 마음으로 물었다.
“세상에, 무슨 소식인데 그러세요?”
“정말 굉장해요! 지난 주 북경에 있는 우리 교회 부흥회에서 30명이나 구원을 받았다지 뭐에요!”
나는 속으로 자책했다. 길키, 넌 이교도야. 네가 듣고 싶은 소식은 딱 한 가지고, 다른 사람이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문제는 전혀 관심없지?
- 본문 중
책의 내용은 너무 길어서 여기에 모두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의 지은이인 길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바깥에서 쌓아온 여러 사회적 명성이 통용되지 않는 무인도와 같은 수용소에서 목사, 신부 등의 기독교 사역자들은 그들이 굳건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덕성을 유지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실제로 위에서 소개한 책의 한 대목처럼, 길키는 자신의 신앙이 여러 번 흔들리는 경험을 해야 했고, 책의 끝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진정한 신앙인은 의미와 안정성의 중심을 자신의 생명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안에 둔다. 신앙은 내적으로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고, 자기중심성을 포기하여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늘날에도 해당되는, 공동체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물질적 결핍, 외부의 폭력 등이 아닌, 우리 인간 사회 내부에 발생한 도덕적 실패로부터 발생함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수용소는 물질적 결핍과 군에 의한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용소 내부의 사회가 붕괴될 위기는 기독교 내의 종파들끼리의 다툼, 그리고 정결을 지킬 의무가 있는 수사와 눈이 맞은 여성들에 의해 그 부모나 친척의 분노 등, 당시 기독교인들의 정서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교리적 혹은 도덕적 실패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질만을 일삼다가 끝내 자살까지 몰고간 주민들의 사례와, 우리도 한 때는 난민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난민 이슈가 터졌을 때 자국의 이익과 자신의 것을 내려놓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반대의 목소리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면서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막론하고 인간의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각종 심리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통찰을 제공한다. 한편으로는, 물질적인 것과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인간적인 가치를 되찾기 위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 지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진부하다는 건 알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위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 이전글아주 작은 습관의 힘 20.08.06
- 다음글사람에 대한 예의 20.08.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