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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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Oscar goes to.... Parasite!" 제인 폰다의 입에서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머리가 하얘지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2020년 오스카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시상식이었다. 그 밤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 최초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는 밤이었고, 온 국민이 함께 흥분과 고양된 기분을 만끽하는 밤이었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에 기념비적인 날이 된 그 시상식에는 기생충 외에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같은 시상대에서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아메리칸 팩토리'. 제작자가 전직 미국 대통령 오바마 부부라는 뒷배경과 영어와 중국어로 제목이 나란히 적혀진 포스터는 내가 작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묘한 끌림을 주었다. 내가 넷플릭스를 처음 구독하던 날, 나는 그 끌림을 따라 필연적으로 넷플릭스의 첫 번째 작품으로 아메리칸 팩토리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메리칸 팩토리는 상당히 흥미로운 배경을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인구 14만의 중소도시 데이턴. 데이턴은 GM 공장을 중심으로 산업이 돌아가는 공업 도시였다. 데이턴을 먹여 살리던 GM 공장의 폐쇄로 2만 명이 일자리를 잃어 도시의 존폐마저 위협되던 시점, 중국의 유리 기업 '푸야오'는 GM의 공장을 인수하여 유리공장을 세우게 된다. 수많은 데이턴 시민들을 고용하며 데이턴의 구세주가 된 푸야오는 중국 기업과 미국 노동자의 화합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상하 수직적인 기업구조와 규율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미국 노동자들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노조 설립 여부를 두고 회사와 노동자들은 격렬한 다툼을 일으키게 된다. 노조 설립 여부에 대한 선거에 앞서 노동자들에게 임금 상승이라는 당근과 해고라는 채찍을 사용한 푸야오는 결국 해당 선거에 승리하게 되었지만, 노동자와 회사 간의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감정의 골을 보여주며 다큐멘터리는 막을 내린다.
아메리칸 팩토리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오스카상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세 가지를 뽑아보았다: 1) 철저한 중립성을 지킴을 통해 얻은 정보의 객관화, 2) 깊은 신뢰 관계 구축을 통한 각 인물의 심리묘사, 3) 미-중 갈등의 시대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 제시, 이렇게 세 가지다.
아메리칸 팩토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객관성이다. 스티븐 보그나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특별히 정해진 관점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없이 오직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는 객관성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보통은 촬영 전부터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문명의 환경파괴와 이로 인한 비문명의 피해'라는 정해진 메시지를 가진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과 같은 경우, 그 정해진 메시지를 관철하기 위해 이미 문명과 교류를 하던 '조에족'을 마치 문명과 접촉이 없던 비문명 종족인 것처럼 조작하였고, 이 사건은 추후에 밝혀져 논란이 되었었다. 정해진 틀이 없는 다큐멘터리는 자칫하면 기승전결이 없는 루즈한 이야기로 머물 수도 있기 때문에, 감독들은 스토리나 메시지에 영상을 껴맞추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스티븐 보그나 감독은 자신의 다큐멘터리의 객관성을 지키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것일까? 망해버린 공장과 황량한 데이터의 모습을 찍는 단순한 다큐멘터리로 머물 수 있었던 아메리칸 팩토리는, 예기치 못한 푸야오의 등장과 노조 설립 갈등을 통해 훨씬 진실성 있으면서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다.
아메리칸 팩토리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은 장기간 촬영을 통해 촬영진과 등장인물들이 깊이 있는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촬영진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1,200시간의 영상을 촬영하면서 데이턴의 시민들과 푸야오 회장, 공장의 관리직들과 노동자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이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을 통해 일반적으로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들 - 중국 기업 문화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중국인 노동자,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푸야오 회장의 푸념, 회사가 노사 설립을 주도하는 노동자들에게 협박성 강연을 하는 장면 - 을 촬영하는 것이 가능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해줄 것이라 믿은 등장인물들은 촬영진들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나누어줄 수 있었고, 덕분에 다큐멘터리는 훨씬 깊이 있고, 각 사람의 심정까지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의 객관성과 등장인물들의 진솔한 인터뷰는 중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에 대한 여러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 우선 중국인과 미국인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중국은 상하위복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로 명령에 대한 의문과 고민 없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은 일의 효율을 많이 증가시키지만, 대신 윗사람이 잘못된 지시를 전달할 때도 전혀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 수동적인 노동자를 만들어버린다. 미국은 반대로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하는 사회로 주어진 명령에 대해 이해를 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일 처리가 늦어지고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원칙과 합의를 통해 일이 진행되어 탄탄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를 쉽게 보이는 장면은, 푸야오 회장이 공장을 방문할 때 드러난다.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한 회장은 주차장 출입구의 위치가 불편하다고 옮기라고 하고, 화재경보기의 위치가 보기 좋지 않다고 숨기라고 말한다. 미국인 경영진들은 주차장 출입구를 바꾸는 데에 수천만 원이 들고, 화재경보기 위치는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옮길 수 없다고 반발하지만, 중국은 경영진들은 어떻게든 회장님 뜻대로 해결하라고 지시한다. 위와 같은 상황은 다큐멘터리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되고, 조그마한 갈등이 중첩되어 결국 노조 협상의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한편 중국인들과 미국인들이 서로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도 크게 다름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영상 전반적으로 미국인들을 '손이 불필요하게 크고 느린 사람들'이라 부르며 효율이 떨어지는 미국인들을 중국인들이 감시하고 교육해서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중국인들이 감정이 메마른 기계와 같이 여기며, 점심시간도 줄이고 쉬지 않고 일하는 중국인들을 때로는 안쓰럽게, 때로는 업신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영상 중반, 사내 대회가 열렸을 때 화려하고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는 중국인 노동자들을 보며 미국인들은 도대체 중국인들은 언제 시간을 내고 공연을 준비했나 의문을 가진다. 반대로, 내가 보기에도 처참하고 부끄러운 수준의 공연을 준비한 미국인들을 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은 한심함을 넘은 경멸의 눈길이었다. 개인을 희생해서 회사 이벤트를 준비하는 중국인과 회사를 위해 개인을 절대 희생하지 않는 미국인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겉으로는 너무도 달라 보이는 미국인들과 중국인들이지만, 개인적인 인터뷰들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은 사실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미국인 경영진들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자세를 보며 감명을 받고, 겉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국의 노동자들도 중국인들처럼 되기 원하였다. 이러한 경영진들의 욕심은 그들이 중국 연수를 갔다 온 뒤 더욱 심화하여서, 공장 노동자들에게 기업 노래를 부르거나 기업 구호를 외치게 하는 식으로 중국식 기업 문화를 억지로 도입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미국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은 미국인들의 자유로운 삶을 부러워하고, 자신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기업 문화를 따른 분이지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회사보다 가족을 먼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중국과 미국 상관없이 기업인들은 노동자의 처우보단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반대로 노동자들은 기업보단 자신과 가족을 우선시한다. 그저 사회가 어느 쪽의 손을 더 들어주냐의 차이가 있을 뿐.
아메리칸 팩토리를 보며 한가지 깨달은 점은, 우리나라 사회가 두 사회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사실 다큐멘터리에서 보인 중국의 기업 문화는 10~20년 전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를 빼닮아있다. 또 미국인들의 사고방식과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요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부 쟁취하였고 일부 추구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미 지나간 기업문화는 고리타분하게 보이고, 추구하는 기업문화는 선진의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아메리칸 팩토리는 중국식 기업문화가 시대착오적이며 미국의 기업문화가 진보한다고 단정 지어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기에 지속해서 적자를 내던 공장이 노조 설립이 실패하고 중국식 기업 문화가 자리를 잡은 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한 부분을 보면 중국식 기업문화도 효율과 성과의 측면에서 장점이 있음을 다큐멘터리는 보여준다. 결국 회사의 이윤과 노동자의 처우는 상관관계가 분명 존재하기에, 회사가 어느 정도는 잘 돼야 고용도 잘되고 처우도 개선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기업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 가운데 절충안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생각하게 된 점은, 중국 사회와 미국 사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존재한다면 두 사회의 화합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영상 초기에는 서먹한 관계로 나오는 중국인 사수 웡과 미국인 부사수 필립의 경우,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결국 필립이 공장에서 잘린 뒤에도 필립과 웡은 친한 친구 사이로 지내게 된다. 서구권 사람들과 아시아계 사람들의 오해 갈등을 여러 번 보고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이들이 갈등하는 원인은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서로의 역사와 철학,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서로의 생각이 본인의 것과 다르다고 비난하고 차별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무식한 행위이다. 어쩌면 서구 사회와 기존 아시아 사회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이러한 생각의 간극을 줄이는 중립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그저 협상가의 위치에 서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회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고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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