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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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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지희
댓글 0건 조회 5,667회 작성일 20-06-07 23:36

본문

빛 혹은 그림자


로런스 블록 엮음

 

이 책은 화가 애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모티브로 하여 17명의 작가들이 그 그림을 보며 얻은 영감으로 쓴 단편소설집이다. 한 예술가의 작품이 또 다른 예술가에게 창작의 모티브를 주고 그것을 하나의 주제로 꿰어낸 이 책의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애드워드 호퍼라는 화가는 모르더라도 그의 작품은 본적이 있을 것이다.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대체 둘이 무슨 말을 주고 받는 거야?’ 라고 의문을 들게 했던- 공유와 공효진이 찍은 SSG 쓱 광고는 애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오마쥬 한 광고이다. 그 외에도 그의 작품은 인테리어 소품 속에서나, 영화 속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의 그림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많이 쓰는데 그 속에서 극적인 이야기가 탄생된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은 역시 2017년 에드거상 수상작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 이다. 이 작품은 호퍼가 1927년 그린 ‘자동판매기 식당’ 이라는 그림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꾸려나갔다. 한 테이블에 고급스러운 초록 코트를 입은 여성이 노란색 모자를 쓰고 커피를 마시고 있다. 혼자 테이블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그녀는 표정이 어둡고 긴장되어 보인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작가 로런스 블록은 혼자 앉아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녀는 자신이 이 식당에서 어떻게 보일지 초조한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선다. 그녀는 이제는 곁에 없는 그녀의 남편을 그리워하며 콩 스프와 빵과 커피로 식사를 한다. 주변 사람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도 본인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눈치채지 않기를 바란다. 계획한 일을 진행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주저함도 잠시, 그녀는 식기를 가방 속에 챙겨 넣고 식당을 나오다가 식당 매니저에게 걸린다. 사실 그녀는 식기를 훔치려던 것이 아니다. 그 식기가 본인의 것임을 증명하고 매니저에게 명예훼손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려는 반전을 알아챘을 때,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 그대로 읽어가던 나도 반전에 당했다. 그녀가 호텔에 돌아와서 매니저에게 뜯어낸 돈으로 월세를 해결하고 다음엔 어떤 식당에서 이 방법이 통할지 고민하는 모습은 식당에서의 그녀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빛과 어둠으로 반전되는 그의 그림의 뜻을 읽은 것만 같았다.



두번째로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은 1940년작 ‘밤의 사무실’을 모티브로 쓴 작품이다. 그림은 한 사무실에 여자와 남자가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 금발의 남자는 책상에서 서류를 읽고 있고 비서처럼 보이는 여자는 남자가 앉은 책상 옆 캐비닛에서 그가 필요한 서류를 찾고 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무실을 그린 것 같은 이 작품은 단편소설로 다시 태어난다. 여자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여성과 다른 큰 키로 인해 고향에서는 따돌림을 당했고 뉴욕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자 상경하였다. 그녀는 한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을 했고 겨우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적응할 때쯤 실족사 한다. 그녀는 그녀가 일하던 일터를 좋아했고 상사를 존경했고, 상사는 그녀가 뉴욕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랬기에 죽은 다음에도 그의 사무실에 가서 그가 찾고 있는 서류를 옆에 놓아두고 떠난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한 단편이었다. 단순히 야근하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을 단번에 특별한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이야기였다. 하나의 작품 그 자체로도 좋지만 예술이 낳은 또다른 예술이 그 작품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퇴근하고 혹은 잠깐 시간을 내서 읽는 책은 호흡이 길면 단번에 빠져들기 힘들다. 그에 비해 이 책은 단편 소설집이라 호흡이 짧아 읽기 편했다. 또한 소설 시작 전에 호퍼의 그림이 있고, 소설의 제목이 있어서 ‘어떤 이야기일까?’ 상상하며 읽으니 재미있었다. 단편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앞 페이지를 펼쳐 호퍼의 그림을 보면, 처음 내가 생각했던 그림과는 또 다르게 보인다. 살면서 어느 순간 호퍼의 그림을 마주치면 이 책의 이야기 꾸러미가 생각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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