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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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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675회 작성일 20-06-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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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윤현희 지음


운이 좋게도 몇 년 전, 파리에 발을 디딜 기회가 생겼었다. 그 때의 파리에서의 가장 좋았던 체험은 모네, 고흐 등 인상주의 화가들이 생전에 살았던 집과 그림을 그렸던 장소들을 찾아 다니며 화가들의 인생에 대한 설명을 듣는 투어였다. 매 순간 위대한 화가들의 삶의 흔적들이 느껴지는 듯했던 그 투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고흐의 무덤을 살펴보고 고흐가 자살하기 일주일 전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렸던 그 밀밭에서 가이드가 자세하게 설명해 준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의 불행으로 가득했던 일생을 천천히 곱씹어 본 시간이었다. 특히, 밀밭을 내려오며 가이드가 개개인에게 나누어 준 무전기를 통해 틀어준 Starry, Starry Night을 듣는 그 순간의 감동은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몇 년 뒤, 2017년에 개봉했던 ‘러빙 빈센트’ 라는 애니메이션을 넷플릭스로 접했다. 125명의 화가들의 동원되어 10여년 간의 걸쳐 고흐의 화풍을 성공적으로 재현해 냈다는 호평을 들은 이 작품에는,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고흐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비록 스크린으로 보는 그림들이었지만, 고흐의 작품을 다시 볼 때의 감동은 20대 초 오르세 미술관에서 아무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느꼈던 감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스크린으로 나타나는 고흐 특유의 색의 조화와 미술관에서 직접 감상하면서 뇌리에 박혔던 만져질 듯한 두꺼운 붓자국들을 통해 고흐가 그 그림을 그릴때의 감정을 조금을 느낄 수 있는 듯했다.

 

책에 따르면 뇌과학자들은 고흐의 그림 앞에서 우리의 감정이 북받치는 이유를 신경학적 기제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머리 뒤쪽에 위치한 후두엽의 시각피질에서 시각 자극의 처리가 일어나는데, 뇌 영상을 통해 촉각적 심상을 재현한 이미지를 통해 촉각적 감각이 시각피질과 인접한 측후두엽에서 유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측후두엽에서는 또한 시각과 촉각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데, 이 회로는 해마와 편도체, 도파민 회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해마는 감정과 관련된 기억을 저장하는 기관이며, 편도체는 기본적인 감정의 유발을 관장하고, 도파민 회로는 행복감을 유발한다. 우리가 고흐의 그림을 볼 때는 시각과 촉각, 사적인 감정 기억과 행복감을 관장하는 두뇌의 기관들이 동시에 자극을 받고 활성화된다. 그림을 보고 활성화된 뇌를 통해 그림을 색과 질감의 조화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을 돌아볼 수도 있으며, 고흐의 일생을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고흐와 함께 책에 소개된 화가들 중 유독 흥미를 끌었던 피에트 몬드리안이라는 화가는 내덜란드 구성주의 회화의 거장으로, 20세기 초 추상화의 초기 화가이다. 그는 세상 모든 만물의 근본적인 형태가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수렴되고, 수직과 수평이 만나 이루어 낸 균형의 공간에 우주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몬드리안의 대표적인 작품인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에서 볼 수 있듯이 수직과 수평이 만나 이루어지는 정돈된 공간과 삼원색의 조합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그는 “형태와 자연석 색채의 독특함이 주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켜 순수한 진리를 못 보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 하면서 자연적 형태들을 불변의 형태로, 자연색들을 근본적 색채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무척이나 단순해 보이는 추상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이유 역시 신경학적 기제로 설명될 수 있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볼 때는, 망막에서 뇌 후두부의 시신경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시 지각 시스템 중 수직과 수평선, 그리고 모서리 탐지를 담당하는 최소한의 세포만이 자극된다. 이에 반해 고흐의 그림처럼 구체적인 형상이나 모호한 형상을 볼 때 뇌는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의 연상작용을 동원해 정보를 보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기억이라는 정보의 저장소인 해마, 전두엽, 하측두엽 등 뇌의 전반이 자극되어 전기적 활동이 일어난다. 몬드리안의 그림과 같이 기본 요소들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볼 때는 다른 영역의 활성화가 차단되면서 뇌가 쉬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몬드리안의 그림이 나에게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그림에 대한 뇌심리학적인 설명이 인상적이기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현대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그림의 특징이 지금의 우리 세대 혹은 더 젊은 세대의 특징을 한 발 앞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복잡하고 상징성을 가지며 깊게 곱씹어보아야 풍부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컨텐츠들은 여전히 가치를 높게 평가받지만, 젊은 세대에까지 보편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한다. 젊은 사람들은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는 영상물 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마블의 히어로물이나 한국에서 16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극한직업’과 같은 가벼운 코미디물에 열광한다. 이런 종류의 단순한 것에 대한 선호는, 폭 넓은 범위의 그림을 그리다 본질을 꾸준히 탐구하다 단순화된 형상을 그리게 된 몬드리안의 그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러한 단순함에만 선호를 가지는 것이 가져오는 우려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지는 이기적이고 상호 배타적인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듯이, 복잡한 형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깊이 생각할 때에는 놀랍게도 공감능력 역시 활성화된다.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단순하고 편안한 것 만을 추구하게 되면 감정과 공감능력의 퇴화로 나타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더 암울하게 여겨지는 것은, 산업혁명을 지나 개인의 가치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진 현대에 공감능력 없이 높아지기만 한 에고는 조화로운 사회가 아닌 자신이 선호하는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끝없는 이분화와 다툼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편안함을 추구하는 중에서도 깊은 생각을 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호에 따라 고전적인 소설을 읽으며 사색할 수도 있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담겨진 풍부한 색채와 작곡가들의 인생에 대해 공감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처럼 미술관에 다니며 그림에 담겨진 내용들을 스스로 이해하면서 소화해내고, 붓 터치 하나하나에 담겨진 화가의 마음에 공감하는 방법 역시 탁월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깊게 생각하고 복잡한 것들에 대해 무서워하지 않고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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