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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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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세민
댓글 0건 조회 5,545회 작성일 20-07-0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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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소년이 온다


단순 베스트셀러란 이유로는 쉽게 여겨서는 안 되는 책, 아니, 오히려 역사를 몰라도 꼭 읽어야 하는 책, 우리에게 어떤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지금의 상황에 만족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책. 작가는 5·18 민주항쟁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강렬한 색채 대비, 필터링 없는 묘사로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글로 표현했다. 한 어린아이의 시각, 적극적으로 항쟁에 참여했던 여러 대학생의 시각, 10년이 지난 후 끝없는 악몽 속에서 후유증으로 살아가는 피해자의 시각을 통해 그 사건을 잊어가는 현실 속의 젊은이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가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찾고자 어떻게 했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그들은 잔인했는지. 나라가 죽인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태극기에 감싼 시신들을 애국가로 달래주는 모순적인 상황을 통해, 과연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열심히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들며 행진했지만 결국 우리의 목숨은 애국가와 태극기가 뺏어간 상황 속에서 이제 중학생인 ‘동호’는 의문점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마 그들이 찾고자 하는 태극기의 나라와, 나의 옆구리의 살을 파내는 강력한 물방울들을 퍼붓는 지금의 태극기는 달랐을 것이다. ‘동호’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과연 그가 느낀 죄책감은 물방울에 맞은 친구의 손을 놓쳐버려서일까, 아니면 그저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 아니 시민군들의 상황이 안타까워 그랬을까. 그는 알았을까,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의 혼이 말하길 “너도 목숨을 바쳐야지”가 아닌 “절대 죽지 마” 였다는 걸. 아마 혼의 얘기를 들었다면 동호는 그렇게 쉽게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영화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 위한 한 군 장교의 총기 난사로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내려오는 모습으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중학생의 나이로.

 

7대의 뺨을 맞은 ‘은숙’은 어떤 기분이었을 까, 당시 참혹한 학살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본인의 모습이 정말로 역겨웠을까. 그런 악바리로 어떻게든 그 상황을 표현하고자 7대의 뺨을 견뎌내며 그때의 현실을 글로써 역사에 남기려 했을까. 한편, 검열대에 올라간 이 시대의 역사가 단순히 검열관의 한 사인펜에 의해 뭉뚱그려 지워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소리를 못내, 입술로만 표현하는 연극배우의 모습을 보면서 아마 은숙은 그 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느꼈을 것이다. 육신에 대한 학살만 멈췄을 뿐, 자신들의 민주주의와 자유는 끝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몸서리치게 느꼈을 것이다. 죽어버린 ‘진수’도 아마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어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에게 몇 날 며칠 꽂혀있던 손가락의 모나미 펜이 뼈를 드러내며 그의 신념을 차츰차츰 죽여버릴 때 진수는 아마 그때 이미 죽어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신념을 죽여버리는 건 정말 쉬웠다. 그저 한 공간에 가둬두고 그들의 동물적인 욕구에 휩싸이게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 함께 새로운 태극기를 향해, 애국가를 외치던 그들의 머릿속에 ‘네가 많이 먹으면, 내가 먹을 게 부족하잖아’라는 생각으로 가득한 채, 그들의 정신을 죽여버리는 건 며칠이면 충분했다. 그런 진수에게 감옥을 나온 후에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모나미 펜이 아직도 그의 손가락을 갉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이상 갉아먹을 손가락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증언을 수십 번씩 고민하는 선주의 모습을 보면서, 이미 지날 대로 지난 시점에서도 그들의 마음속엔 아직도 물방울이 세차게 쏟아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선주는 녹음기를 껐다 켰다를 반복한다. 최악은 마지막이었다. 동호를 그때 상무관에 놔두고 간 어머니의 회고를 들으면서, 왜 그녀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정대와 정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동호가 그들을 찾으러 간다고 목숨을 바치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 속에 살아가면서, 왜 한 사람의 오만한 욕심 때문에 이 세상 모두가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그 많은 물방울을 견뎌내야 했는지. 왜 동호를 데려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싸우던 형제를 보며 한 사람의 잃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잃는 그 시대가 참 얄미웠다.

  

작가는 단순한 민주항쟁의 참혹상에 대해 그릴뿐 아니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사람들로 이 세상이 가득 채워지는 시대가 오더라도, 그 시대를 항상 기억하고 우리가 어떻게 항쟁하고 어떤 의미의 태극기를 바라왔는지 현재 이 시대의 태극기는 우리가 그토록 싸워왔던 태극기가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항쟁해야 한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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