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 서머셋 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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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은 2007년에 개봉한 영화 ‘페인티드 베일’의 원작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키티는 영국인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고, 사교적인 모임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키티의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더는 출세 할 수 없음에 좌절하여 자신의 딸을 좋은 집안으로 시집보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키티는 떠밀리듯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남자 닥터 페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은 키티를 불행하게 하였고 결국 그녀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다. 그러나 그 내연남은 유명한 바람둥이였으며 키티도 많은 바람 상대 여자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닥터 페인은 콜레라가 창궐하고 있는 중국의 메이탄푸지역에 함께 가던지 이혼을 당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하고, 키티는 메이탄푸에 동행하게 된다.
이 지역에서는 콜레라가 심각하여 이미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닥터 페인은 외도한 아내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이 곳에 데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키티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콜레라를 치료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무료하고 답답한 삶을 살던 키티는 길에서 거지처럼 쓰러져 죽은 인간을 보고, 수녀원의 조세프 수녀를 만나게 되면서 이전의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자연스레 그녀도 남편을 도와 수녀원 일을 돕게 되고, 부부사이는 조금씩 회복이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닥터 페인은 콜레라에 감염이 되고 “죽은 것은 개였다”라는 말을 남긴 채 죽는다. 닥터 페인은 키티가 자신이 죽은 후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랐고, 조세프 수녀는 이 의견을 존중하여 키티를 영국으로 보낸다. 돌아온 키티는 영국에서 내연남을 다시 만나게 되고 다시 정욕에 흔들리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답다라는 말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많을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전쟁인데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냐는 것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쫓고 있는 것은 베일에 가려진 어떤 허상일지도 모른다. 메이탄푸에 가기 전의 키티가 바로 허상을 쫓는 사람이었다면, 메이탄푸에 간 이후에 정신적인 성숙을 이룬 키티의 모습이 바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한갓 환영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취지의 말이 나온다. 영국으로 돌아온 키티가 내연남의 유혹에 다시 한 번 넘어간 것은 실망스럽지만, 그 모습을 반성하고 내연남을 떠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는 내연남의 유혹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마 감독도 소설과 다르게 완벽히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키티의 모습을 영화속에서만이라도 담아내고 싶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외로 이 책에서는 닥터 페인에 대한 서사가 주가 되지 않는다. 닥터 페인은 내성적이고 정말 생물학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아내인 키티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에 대한 배신감도 컸다. 그래서 그는 죽어가면서 “죽은 것은 개였다”라고 말하는데, 죽어가면서까지도 아내를 마음속으로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철부지 아내였던 키티는 결혼생활을 통하여 정신적 성숙을 이루었지만, 자신은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 정신적 성숙을 이루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구절을 생각해본다. “오색의 베일, 살아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이 의미는 앞선 단락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허상, 베일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오색의 베일에 무엇인가 싸여있지만 장막을 하나씩 벗겨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의 장막을 걷고 자신의 인생 모습 그 자체를 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이자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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