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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피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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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6,033회 작성일 20-07-0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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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 우리가 갖고 있는 조급함, 우울함, 경쟁심의 근원을 철학적으로 통찰해 내준 덕분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을 가져다 준 책이라는 소개로 읽기 시작하였지만 ‘뭔가 씁쓸하네?’라는 느낌이 피로사회를 일고난 후 든 나의 생각이다. 그러하다 라는 명확한 결론, 딱 잘라 말하기를 좋아해 와서 그랬을까 작가가 피로사회를 통해 말하는 생각이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난해하거나 수식어가 가미된 문장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이는 평소 책과 인연이 적었던 생활 습관으로 생긴 나의 한계일 수 있지만, 화려한 수식어구가 본질적으로 말하고자하는 바를 다소 비효율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본격적인 사회의 생산인구로서 성장하기 전 이렇게 고단한지에 대해 커다란 벽을 느끼고 있는 학생이다. 올해부터는 매 달 책 한 권을 읽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 인문,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 가보자 했던 나의 목표는 회의감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읽을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철학은 난해했으며 어느 한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들은 내가 보기에 모두 논리적이고 타당해 보였다. 얕은 견해를 가지고 심오한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나열한 책을 읽는 것은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며 작가가 표현하는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급급한, 오히려 지적 호기심을 해결해 나가기는커녕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가 처음 책을 읽기 전 제목인 ‘피로 사회’를 보았을 때 요즘 우리 주변의 세상을 거침없이 직접적으로 표현을 한 단어인가 라는 생각을 하였고 ‘피로 사회’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아무렇지 않게 책을 집어 들고 있었다.   


 ‘피로 사회’에서는 비만과 같은 긍정과잉, 푸코의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율사회에서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성과 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병철 작가는 보르디야르의 ‘같은 것에 의존하며 사는 사람들은 같은 것에 의해 죽는다.’라고 하였다. 긍정이라는 것은 마치 지방과 같아 비만처럼 우리 몸을 감싸고 있지만 외부 어떤 위험으로부터 면역 작용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쌓여간 지방은 각종의 성인병을 유발하는 것처럼 긍정과잉은 지금 당장엔 나를 기분 좋게 할지라도 후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다. 또 성과 주체가 만연한 사회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강요하며 이는 끝임 없이 자기 자신을 마모 시키고 더 나아가 우울을 초래한다고 한다. 이렇게 얻은 성과는 누더기 위의 왕관처럼 어딘가 어색하고 불안하기에 덧없고 초라해 보이며 이러한 목 쥐어오는 사회에서 얻어낸 것은 ‘분열적 피로’를 유발 시키며 개개인을 폭력을 적이고 고립을 초래 하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디스토피아 적만이 않게 느껴졌던 것은 ‘분열적 피로’에서 역지사지를 이해하여 야기되는 ‘세계를 신뢰하는 피로’와 이로 인한 ‘근본적 피로’라는 것이다. ‘근본적 피로를 탈진 상태가 아닌 영감을 주는 피로라고 묘사하며 이러한 피로를 만들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사색하는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결과를 떠나서 과정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나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남은 것은 그 무엇보다 화려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니체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일까 삶이 영원회귀라고 그저 반복일지라도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 인간의 목적이 유전자 보전을 위한 도구 일지라도 삶의 과정을 아름답게 만들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피로 사회는 니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분열적 피로는 낙태한 삶의 부산물이라면 ‘세계를 신뢰하는 피로’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삶의 부산물일 것이다. 낙태함이든 초인이든 어떠한 삶을 살아가더라도 피곤을 피할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 가령 하루 종일 놀기만 해도, 누워있기만 해도 피곤함을 느끼는 걸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피로함을 느낄 것인지는 다시 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어떠한 피로함도 찬양하겠다. 작가가 경계하는 ‘분열적 피로’ 일지라고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병철 작가의 긍정과잉에 파생된 한 가지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만약 지방과 같은 긍정이 아닌 내 몸을 곧추 세울 수 있는 근육과 같은 긍정이라면 어떠할까. 이는 피로사회를 읽고 내가 내린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자기 자신이 마모되어 누군가 보았을 때 누더기 위에 왕관을 쓴 꼴이 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 모습이 오래 전부터 소망하고 갈망해왔다고 생각한다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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