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구애 – 편혜영
페이지 정보

본문
저녁의 구애 – 편혜영
이규섭
인간은 사고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린다. 일상은 매 순간 크고 작은 판단의 연속이며, 그 때마다 이익이 될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이익이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고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고민이 많은 삶은 고통스러운 삶이다. 현대인의 삶에는 안그래도 고민할 것들이 넘쳐난다. 사고를 단순화 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절차들은 사라져 버리고, 이익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니 그 어떤 사람이라도 소소한 일상에서는 불쑥 매정하고 이기적이라 때론 당혹스럽기까지 한 선택을 불현듯 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다. 모두에게 다 베풀고 다 내주는게 최고 겠지만, 내 것을 지키고자하는 마음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소한 것들이다. 경조사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축의금을 얼마를 내야할지. 그런 것들이 문득 나의 일상에 들이 닥치면, 낯선 기분에 휩싸인다. 이렇게 별 것 아닌 것들로부터 새삼 어른의 삶에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당황하게 된다. 익숙하지 않음은 언제나 조바심이 들게 만들고, 주변을 참고해서 적당히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별거 아닌 것이 된다. 그냥 일상적인 것, 어디에 갈지, 얼마를 내야할지, 연락을 해도 될지, 얼마나 자주 연락을 할지. 갓 성인이 된 어수룩한 꼬맹이의 머릿속 수많던 고민들은 이제 입력된 세팅값을 신속하게 수행하는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대체된다. 우리의 삶에 그런 ‘무의미’한 고민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의 행동에 패턴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 사람들이 참으로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 속에서 굉장히 복잡하고 구체적인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소설 속에서 김은 굉장히 계산적인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 똑똑한 사람이다. 그는 오랜 지인으로부터 오래전 신세진 어르신의 장례식 화환을 요청 받는다. 그 하나의 사건만으로 그가 과거의 기억과 그 인간 관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단정 짓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여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마치 이미 경험한 듯이, 뻔히 예정된 것이라는 듯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에 작은 도움을 받았던 어르신의 죽음 앞에서 그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기에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가 몰염치한 소시오패스여서는 아닐 것이다. 그 딴에는 자신이 받은 은혜에 오랜 시간에 걸쳐 감사를 표했다. 다만, 현재는 그때로부터도 십수년이 지난 상태였다. 그는 반복해서 죽음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말을 되뇌인다. 그는 탄생으로부터 이미 너무 멀어졌고, 죽음 역시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박정하게 여겨지지 않으려 400키로 남짓한 거리에 떨어진 도시로 화환을 배달하면서도, 그것로 인한 ‘손실을 도시로 돌아가면 그만큼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어르신은 그날 밤을 넘기기 힘들 것이었지만, 그가 도착한 이후에도 그렇지 않았다. 친구는 함께 임종을 지키자 했지만, 그는 주변을 배회하면서 시간을 끌고, 기어도 도착해서도 찾아가지 않고 친구의 연락이 언제 올 것인지에 긴장하며 시간을 죽인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40분의 시간을 더 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떠올린다. 장례식장의 간판을 바라보면서 무심코 ‘아직도 안 죽은 모양이네.’라는 부정한 말이 스스로의 입에서 나온 것에 놀라고 만다.
화환을 배달한 병원이 위치한 도시는 과거 지진으로 큰 재난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과거 그곳을 다녀온 동료가 전해준 어묵 통조림을 찾아 헤메던 그는 더 이상 그 재난용품을 구하기 어려움을 깨닫는다. 지진이 일어난 뒤 전문가는 TV에 나와 더 심한 지진이 예측 불가하게 찾아올 것을 경고했고, 도시에는 학생들이 매년 지진 대피 훈련을 하고, 건축물들에 내진 설계가 적용되었다. 모두가 두려움에 긴장했지만, 그는, 400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사는 그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었음을 떠올린다.
여자는 그에게 귀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동시에 필요하기도 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여자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면서 관계를 이어간 모양이다. 그는 그녀에게 무정하게 대하면서도 그녀의 다음 행동을 넘겨짚어 덜 귀찮아 질만한 선택을 하고는 했다. 그날도 그랬다. 여자의 전화에 불현듯 여자와의 관계를 되짚어본 그는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고는, 결국 모든 연인들이 겪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관계를 이어나가다가,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편안해지면서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 들 것이라고,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만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맘처럼 되지 않는 마음에 조급해진 그는 무심코 이별의 말을 뱉는다. 애매하게. 여자는 업무를 핑계로 전화를 끊는다.
시간을 죽이면서 국도를 걷던 그 앞에 트럭이 전복되어 불꽃이 치솟자 그는 당황하여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 불안함과 두려움 앞에서 그는 여자에게 뜬금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그토록 냉정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진실의 여부와 관계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 모든 것들은 그가 도시에 머물렀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러나 진심과 상관없이, 여자의 마음과 상관없이, 그는 두려움이 점지해준 고백 때문에 곧 부끄러워질 것이며 어떤 말도 돌이킬 수 없어 화가 날 것이고 그 말이 불러온 상황과 감정을 얼버무리려고 애를 쓸 것이며 그럼에도 당시 마음에 인 감정의 윤곽이 무엇인지 헤아릴 것이었다. 그 생각에 김은 갑자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여자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러면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멋대로 선택해온 삶에 이유를 부여했다. 구구절절한 이유들은 딴에는 합리적이었고, 진부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이야기에 설득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삶의 이야기였다. 그는 계속 지나온 삶에 그러한 수를 놓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들이 정말로 그렇게 깊은 고민을 통해 도출된 것들은 아닐 것이다. 이유는 선택 후에 부여되었다. 어쩌면 당혹감 속에서 내뱉은 우스꽝스런 구애야 말로 이익을 추구하고, 어려움을 회피하는 선택을 이어오던 그에게 있어 가장 솔직한 고백이 아니었을까. 그 때문에 진실은 하나 없는 거짓이며, 상투적이고 진부해서 진심으로 여겨지지 않을 말이라며 끝없이 부정하면서도, 무심코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진심일지 모른다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 이전글코로나 빅뱅, 뒤바뀐 미래 20.07.05
- 다음글이방인 - 알베르 카뮈 20.07.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