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빠가 됐다
페이지 정보

본문
아빠의 아빠가 됐다
조기현 저
나이 스무 살에 아빠가 쓰러지셨다. 오래전 이혼한 가정에 여동생은 엄마를 따라가서 아빠를 돌볼 사람은 아들인 자신뿐이다.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던 청년은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일을 하러 가면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아빠를 봐줄 사람이 없다. 이 책은 그렇게 순식간에 '아빠의 아빠가 된' 청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처음에는 읽기 좀 어려웠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청년 보호자의 실제 이야기라는 것이 자꾸 주저하게 했다. 책의 전반부는 예상대로 정말 그랬다. 아빠의 상황과 병원비 때문에 저자는 꿈꾸던 영화를 접고 막노동을 하고 공장에서 일하기도 한다. 공장의 열악한 상황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덤덤하게 서술하는 장면에서는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읽기 힘들었던 건 저자가 영화에 대한 꿈이 있던 청년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보호자들은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면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놀고도 싶은 보통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읽어갈수록 마음이 아파졌다. 아버지가 퇴원하자 저자는 그동안 공장과 병원과 공공기관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갖게 된다. 그 뜻을 실현해보려고 한동안 시민단체에서도 일한다. 그러나 그 시민단체에서도 환멸을 느끼고 그만두게 된다. 아버지의 상태가 좋아졌다 다시 악화되며 환각을 보는 아빠를 다그치기도 하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되뇌기도 한다. 그런 상태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알고 있어 안타까웠다.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에 덧붙여 한국 사회에서 돌봄의 부담을 말하고 있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가족은 온전히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부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족이니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며 외면해왔던 일을 꺼내 돌봄을 사회에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말한다. 저자는 아버지 돌봄과 자신의 꿈을 양립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아버지 역시 그렇다. 아버지는 치매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이고 본인이 아직 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온전하지 않은 상태와 가끔 겪는 치매 증상으로 인해 취업하기 어렵다. 아들도 일을 하러 나가야 하니 관리가 어려워 병원에서 지내야 하는데 병원 밖에서도 약간의 케어가 있다면 충분히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돌보는 공동체를 만든다면 보호자도 자신의 삶을 모두 갈아 넣지 않아도 되고 그 당사자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p. 77~78
'다음날 대학 병원으로 가는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그렇게 가지 말자고 다짐한 곳에 다시 가고 있었다. 앰뷸런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산소마스크에 펌프질을 했다. 펌프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빠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오므렸다.
적금 깨는 정도로 안 되겠구나. 빚을 지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못할 듯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멀어진 내 미래에 언제 닿을 수 있을지 몰라서 초조해졌다. 나는 왜 아빠를, 이 사람을 살리려고 할까. 화가 났다. 화를 억누르지 못해 씩씩거리면서도 아빠에게 산소를 주려고 손을 오므렸다. 사이렌을 울리며 꽉 막힌 도로를 뚫고 나가는 앰뷸런스가 꼭 바다를 가르는 배를 떠올리게 했다. 작은 보트 하나에 의지해서 호랑이와 사람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이었다.'
이 부분을 읽는데 애증의 날카로운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빠를 돌봐야 한다는 부담에 짓눌리면서도 아빠의 보호자라는 것이 살아갈 힘을 준다. 그걸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답게 '라이프 오브 파이'에 비유하는 것이 확 다가왔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파이는 망망대해에서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둘만 표류한다. 자신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호랑이를 돌보며 파이는 표류와 절망에서 살아남았다. 그 아이러니를 자신의 돌봄과 연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돌봄을 경험하면서 겪은 감정을 솔직하게 쓴 글을 읽다 보니 마지막에 그가 하고 싶은 일이 이해가 되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아버지의 일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고 돌봄 경험을 나눌 청년들 모임을 만들고 싶어 한다. 솔직한 이야기는 사람을 움직인다. 그가 겪은 돌봄의 경험은 남의 이야기였다가 점점 나의 이야기가 된다. '나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다.' 자신의 삶과 돌봄을 양립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 이전글내 마음의 보물창고 20.07.06
- 다음글행운의 절반, 친구 - 스탠 톨러 지음, 한상복 20.07.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