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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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 최은영
이규섭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사람들은 쉽사리 인간성을 정형화 해둔 채로 ‘이 사람은 이런 캐릭터고, 저 사람은 그런 캐릭터다’ 라는 식으로 단정 짓고는 한다. 그 사람이 보여준 단편적인 모습들 사이의 여백을 대강 채워 넣고는 아주 알맞은 추세선을 그렸다고 착각하고는 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은 복잡한 것이라 여기면서도 타인의 삶을 단순하다고 여기면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외면한 채 다 안다는 듯 구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지. 그래서 때때로 더 오래 알고 지낸 이들, 더 가까운 이들의 진심을 놓치고는 한다.
이야기는 소유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엄마와 할아버지와 셋이 사는 가정의 분위기는 삭막하다. 아무 능력도 없이 집에서 쉬면서도 가부장적인 할아버지와 무뚝뚝한 엄마. 그러던 어느날 일본인 쇼코가 교환학생으로 홈스테이를 하게 된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할아버지가 쇼코를 대하는 모습은 소유에게 충격이었다. 누구보다 구세대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그가 쇼코 앞에서는 마치 소년처럼 들떠서는 열려있는 사람인냥 노력하는 것이 당혹스럽기 까지 했다. 엄마도 외국어를 배워야 겠다는 둥 쇼코의 등장으로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소유는 놀라기도 하면서 누구보다 가까운 이들의 몰랐던 모습을 쇼코가 이끌어내었다는 사실에 조금의 열등감을 느낀다. 쇼코는 소유와 이야기할 때 늘 자신감에 넘쳐보였고, 파격적인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하고는 했다. 소유는 쇼코를 동경했고, 동시에 질투했다. 쇼코가 짓던 미소. 부끄러운 듯, 어쩌면 서늘하게 느껴지는 미소가 소유의 마음을 대변한다.
어느덧 쇼코는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할아버지는 계속 쇼코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한때의 추억으로 남은 채 어느 순간 편지가 오지 않게 된다. 쇼코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활력을 되찾은 듯 했던 할아버지는 어느 새 다시 예전처럼 돌아갔다. 소유는 대학으로 진학했고,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꿈에 젖어만 갔다. 교환학생 중에 쇼코의 소식을 전해듣고는, 자신감이 생기자 쇼코를 찾아가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쇼코는 자신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꿈을 위해 살아가기보다 현실을 위해 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택했고, 아무 힘도 없이 초췌해진 모습으로 맞이한 그녀는 과거의 쇼코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약해진 그녀의 모습에 소유는 실망했고, 도망치듯 일본을 떠난다.
다시 시간은 흘러 소유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제작한 단편 영화는 혹평을 받기 일수 였고, 뒤늦게 취업을 준비하며 고시원에서 변변찮은 삶을 이어갈 뿐이었다. 상처받은 자존심과, 버거운 생활, 높은 이상에 비해 형편 없는 현실, 주변인들과 비교로 열등감에 짓눌린 그녀는 조금씩 망가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고시원으로 찾아온다. 그럼 그렇지. 쇼코에게 편지가 왔단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누구보다 한가한 그녀에게, 많이 바쁠 것이라면서 금새 자리를 뜬다. 그날 밤, 할아버지가 통원치료 중임을 알게 된다. 그날부터 할아버지를 간호하면서 그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소유가 몰랐던 할아버지의 삶이 어땠는지 조금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짧은 예순 다섯 밤이 지나고 할아버지는 소유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쇼코를 만난다. 할아버지와 쇼코가 주고 받은 편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쇼코가 왜 아픈 시간을 보냈는지를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쇼코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때는 오히려 소유가 쇼코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음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납골당을 방문하고, 쇼코는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어린시절 보았던 서늘한 미소를 남긴 채.
소설 마지막에 보여지는 쇼코의 미소는 미묘한 느낌을 준다. 어떤 의미의 미소였을지, 둘은 앞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아니면 마지막 만남 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인지 독자는 혼란스럽다. 소설 내 등장하는 이 미소가 주는 느낌이 계속 변화하는 것은 우리가 타인을 관찰하는 방식에 분명 우리 자신의 편견이, 어떤 배경이 깔려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각자의 입맛에 따라 또 다시 타인을 헤아리려 들겠지. 그렇게 느낀 우월감과 열등감과, 온갖 감정들을. 자신의 감정들을 마치 타인을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인 냥 착각할 것이다.
부끄러운 듯. 아니면 부끄러운 듯 보이기 위해 지은 그 서늘한 미소. 어쩌면 관계는 그 미소와 같은 것이다. 이해했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확신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문득 스쳐 지나가는. 그 일시적이면서도 불안한 관계가 생각처럼 무의미하다거나 허술하지 않다는 것. 여전히 모호함과 불안감을 남긴 채, 100%가 아닌 것에서 오는 충만함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좀 더 제대로 타인을 관찰해야 한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내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 교감하기 위해서.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가 다를 수 있음을, 그런 조금의 다름과 위화감이 겹쳐 올려져서 캐릭터가 아닌 사람이 내 안에 다가 올 수 있도록.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에 깊이 손을 휘젓는 것으로, 필히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서로에 마음에 인 소용돌이가 끊임없이 무언가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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