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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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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5,713회 작성일 20-06-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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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3번의 큰 굴욕을 겪었다고들 한다. 갈릴레이의 지동설 주장으로 인한 천둥설의 붕괴로 한 번, 우리는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다윈의 진화론의 등장으로 두 번, 마지막으로 모든 정신활동의 최종 목표는 성행위를 위한 행동이라는 프로이드의 주장이 마지막 세 번.

 

 프로이드는 모든 행동은 결국 성행위를 위한 활동으로 귀결 된다고 봤다. 이런 프로이드의 관점을 생물학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성행위라는 것은 유전자 보전 행위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인지론과 과학 그리고 생명과학을 합리적인 관점으로 해석한 이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은 4장의 ‘유전자 기계’ 그리고 11, 12장의 내용 ‘밈Meme-새로운 복제자’,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 한다.’ 이 부분으로 생각 된다. 제 4장에서는 유전적 이전의 생존 기계적으로 존재 했던 계체가 수동적으로 피난처를 만들었고 유전자가 되어 동물과 식물 각각이 유전자 보존을 위하여 특수하게 진화 했다. 그로인해 유전자 보존이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되면 자연 도태가 진행되었고 환경에 적합하게 진화 한 쪽이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제 5장에선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고,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 기계에 프로그램을 짜 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고 한다. 그리고 11장, 12장부터 이타적인 행동들이 즉 마음씨 좋은 전략이 사기꾼 전략보다 생존에 적합하다는 것을 여러 사례와 컴퓨터 통계를 이용하여 이타적 행위를 설명한다. 그 외에도 도킨스는 책 중간 중간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성 문명을 통하여 이런 유전적 독재 이기적 행위를 이겨 낼 수 있다고 표현하며 작가의 인도주의적 모습이 함께 느낄 수 있다.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사람, 생명체를 유전자 보존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해보니 고령화에 따른 저 출산이 이렇게도 설명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평균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고 위험 또한 많지 않다, 그런 과정에서 출산을 통한 유전자 보전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해 졌다고 볼 수 있다. 또 중성화한 애완동물의 평균 수명이 더 긴 것을 보았을 때도 출산이라는 유전자 보존 선택지가 없어졌기에 필사적으로 장수 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유전자 보존을 위한 도구로 사람을 제시하는 걸 보며 과연 종교인들이 이를 보며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했다. 상당히 파격적이며 조심스러운 주제인 것이 분명한 만큼 종교가 가지고 있는 모순, 특히 기독교 부분에 대하여 날이 선 비판과 합리적인 의문을 표하는 부분이 많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주말 예배를 다닌 만큼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내가 봤을 때도 도킨스 작품 속 주장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으며 종교계가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지 싶었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특히 형이상학이나 도덕학에서 신이나 자아, 도덕과 같은 것들은 실제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없어서 의미(Sinn)가 없으며,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는 부분과 상통한다. 과연 신이라는 것에 대하여 의미를 정의할 수 있고 그것에 과하여 단언 할 수 있겠는가?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그리고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와 함께 인기도서인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파급력 있는 작품이고 생명체의 인식, 행위를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정연하게 풀어 나갔다 하여도 우리가 하는 행동의 결정권이 우리의 자유의지가 아니고 유전자의 선택이라는 주장에 대해 허무주의, 염세주의에 빠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실 나 또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유전적 보전을 위한 선택들의 이유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고귀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우리의 삶에 도덕성, 정당성과 아름다움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무엇이든 그게 유전적 선택이라 할지라고 그 과정이 의미 없진 않기 때문이다. 인간과 짐승은 분명히 구분된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능력의 차이가 있고 발전 가능성 측면에서 차이가 분명하다. 결국 유전자를 보존하는 기계일 지라고 그 보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고 다양한 선택과 경험을 할 수 있다. 

 

 우상의 가명을 벗기는 이기로서 무(無)를 내세움으로써 무(無)를 단순한 소모가 아니라 적극적인 창조의 원리로 생각하는 그런 니체의 능동적인 니힐리즘을 말하고 싶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유전자 보전이라 하자. 그럼에도 우린 삶의 과정을 선택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한 삶 자체를 사랑하며 역경을 담담히 받을 수 있는 초인의 삶이 긍정적 살아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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