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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성 연습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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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6,330회 작성일 20-06-0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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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성 연습에 관한 단상

 

중학교 3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작스러운 변성기가 찾아온 것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음악 시간에 합창을 한다고 하면 거의 소프라노 파트로 고정일 정도로 음색이 높았다. 변성기가 거의 지나갈 무렵, 복도에서 음악 선생님과 마주쳐 인사를 건네자 “너는 소프라노에서 음색이 갑자기 베이스로 급변해 간다?” 하면서 매우 신기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동굴 목소리’라는 타이틀은 고등학교 시절 방송부 아나운서를 맡게 되면서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작년에 처음 성가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도 당시 베이스 음역대를 잘 낼 수 있는 단원이 없었던 터라 지휘자님께서 매우 좋아하셨다. 그 이후에 베이스 성악 영상을 찾아보면서 나름대로 베이스 발성을 홀로 연습했지만, 정작 베이스 성악가들처럼 저음을 풍부하고 묵직하게 내는 것은 어려웠다. 나중에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내가 최대로 내릴 수 있는 음은 베이스 음역대에서는 사실 중저음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고음도 애매한 것 같고, 저음도 애매한 것 같아서, 그리고 노래를 좀 더 깊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보컬 레슨을 시작한 지도 (요새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레슨을 최근에 좀 많이 쉬기는 했지만) 어언 4개월 가량이 되었다.  실제로 보컬 레슨을 제대로 받아보니, 정말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다. 첫 수업에서 성대 모형과 해부학 전공 서적을 들이미시면서 소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 지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고음을 잘 내기 위해서는 ‘ㅓ’, ‘ㅗ’ 등 입술 간격이 좁아지는 발음을 할 때조차 최대한 입술을 넓게 벌려 발음해야 하기에 지금은 아예 발음 체계부터 뒤엎는 훈련을 하고 있을 정도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성악 발성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훈련이 완성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후 이 상태에서 턱을 움직여 관을 좁히는 훈련을 통해 비로소 울림을 내는 것이라고.

 


“재중 씨는 전형적인 로우 바리톤의 음색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던 제 말을 정정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고음 올라가는 것에서 느꼈겠지만, 훈련을 계속해서 받으면 테너 음역대를 소화하실 가능성이 보이네요. 오히려 완전히 베이스 음역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어서, 앞으로는 저와 고음을 훈련하면서 테너 쪽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 같아요.”



발성 수업 첫 날, 선생님께 들었던 코멘트다. 정말 의외였던 것은, 동굴 목소리라는 타이틀을 안고 모두가 베이스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가 사실은 테너의 음역대가 소화 가능한 보컬이었다는 것이다. 수업 첫 날, 선생님의 지도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니, 평소에 부르기 힘들어 했던 음을 넘어 어느 순간 아예 한 옥타브를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방금 그 음, 하이 C(C5 음계, 일반적으로 남성이 진성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음의 기준이 되며, 테너들에게는 ‘기필코 넘어야 할 산’이라고 받아들여진다.)인거 알고 계세요?”라고 물어오며 의외라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니 오묘한 기분이 교차했다. 물론 고음을 내는 것과, 그 음역대로 안정된 노래를 풍부한 감정을 담아 전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고 계속된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주변에서 너무 ‘동굴같다’, ‘저음이 풍부하다’, ‘베이스다’라는 말만 듣다 보니 정작 나도 모르게 고음에 주저하고 있었던 나를 그제서야 돌아보았던 것도 그 때였던 것 같다.

 

아직 연구에 대해서는 햇병아리만도 못하지만, 석사 과정 막바지에 이른 요새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연구는 부정적인 마음과의 장기 싸움이라는 것이다. 슬프게도, 교수님과 선배님들께서 ‘그거 아마 ~~한 이유로 잘 안 될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거의 99.9% 이상 그대로 이루어졌다. 측정방은 어찌 보면 내 자신을 돌아보는 참회의 공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돌이켜 보면 석사 과정으로 얻은 것은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무지함의 극치였던 사람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깨달은 것밖에 없다. 앞으로 박사 과정 동안 얼마나 더 실패를 맛보고 좌절해야 할지 솔직히 감도 잘 오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 혹은 자기 자신을 어떤 곳에 묶어두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사실 그것이 터닝 포인트임을, 다른 방향으로의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사실은 고음 역량을 기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었지만 그걸 보지 못해 더이상 내려가지 않는 저음과 마치 거울과 가위바위보 하는것 마냥 이기려고 들었던 내 자신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와 좌절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거기에 내 자신을 묶어둔 채 다른 길로 나아갈 의지조차 잠식하게 두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니 유일하게 달라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앞으로 더 공부하고 더 부딪히는 그 험난한 길이 오로지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라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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