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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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세상의 멍청이들에게 적용되는 4가지 법칙이 있다.
1. 멍청이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2. 멍청이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3. 주변에 멍청이들이 없다면 자기 자신을 의심해봐라
4. 주변 사람들이 다 멍청이 같다고 해서 자기 자신이 멍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무슨 열역학의 법칙도 아니고 얼마나 놀라운 통찰력인가! 기술이 발달하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세상 사람들이 전부 똑똑해지는 줄 알았는데, 인류가 발전을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멍청한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 봐서는 열역학 법칙에 비견될 만한 위대한 법칙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멍청함은 도대체 뭘까?
하루의 일상생활에서부터 멍청함을 되돌아본다. 분명히 나는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마시기 위하여 휴게실로 갔는데, 멍청하게도 머그컵을 자리에 놓고 왔다. 머그컵을 가지러 가기 귀찮다고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여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는 멍청한 짓을 또 저지른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하기도 전에 멍청한 짓을 두 번 저질렀다.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뜯고 뚜껑을 종이컵에, 커피를 휴지통에 버리는 세 번째 멍청한 짓을 저지른다. 그리고 태연하게 뜨거운 물을 그대로 받아버리고 나서 인지하는 네 번째 멍청한 짓을 달성한다. 어이가 없는 나는 컵과 물을 버리고 자리로 돌아와 머그잔을 챙기려 한다. 근데, 도착하자마자 뭘 챙기려 했는지 까먹는 멍청함을 또 달성한다. 이쯤 되면 치매가 아닌지 의심된다. 뭔가 해야 겠다는 생각에 밤새 도착한 메일함을 살펴 필요한 작업을 하는데, 약간 졸린 기분이 든다.
“아 커피 마시려 했지!”
그래도 이런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멍청함은 대충(?) 넘어갈 수 있다. 인간은 참으로 멍청하게도 자기 자신의 멍청함에는 무덤덤한 반면에 자기 주변과 사회의 멍청함에는 바짝 날이 서있다. 한가지 걱정인 것은 자기 자신이 멍청한 줄도 모르고 목소리를 높여서 누가 더 멍청한지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이 멍청한 인간들은 자기 목소리만 내면서 남들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변태 같은 사람들이다.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 역정을 내면서 자신은 틀린적이 없고 당신들이 먼저 잘못했다고 역설을 한다. 성서무오설에 이은 자가무오설의 신봉자가 틀림없다. 이런 멍청한 인간들을 옆에 두고 있으면 사기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세상의 정의와 진리가 전부 뒤틀려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 혼자만 멍청하면 다행이지. 좀비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물어서 자기처럼 멍청하게 만들려고 하는 좀비멍청이들이 있다. 이 좀비들은 기초적인 사고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어서 오직 식육의 본능에만 충실하다. 그런데 웃기게도 동족 좀비들에게는 참으로 관대하고 동지애도 있다. 간혹 이런 좀비들을 치료하겠다고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멍청이들을 설득하여 갱생시킨다고 하는데, 멍청한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고 순진한 것이다. 멍청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수록 멍청한 인간은 더욱 강해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바이러스에 어설프게 백신을 투약하면 내성이 생겨 무용지물이 되는 것하고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변이와 진화를 거듭하여 나름의 지성과 이성을 습득한 궁극의 멍청이들이 있다. 이 멍청이들은 본인의 논리와 사고체계 속에서 모순이 없고, 오직 타인의 이성을 멍청하다고 치부하는 놀라운 정신회로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자아도취가 심해서 멍청한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칭찬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들은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멍청한 깨달음을 전파하는 사이비 전도사가 된다. 자기보다 약해보이면 붙잡고 몇시간이고 일장연설을 하는데, 차라리 좀비한테 물리는게 낫다고 싶을 정도이다. 멍청함 속에서도 눈치는 있는지 자기들보다 강해보이면 숨을 죽이고 있다가 머릿수가 많아지면 다시 과거 좀비의 본성을 깨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 깨달은 멍청이들은 자기 자신들이 누구한테 교묘하게 심리적으로 조종되는 줄도 모르고 살아있는 깨달은 인간으로 착각하고 있다. 누가봐도 좀비 같은 멍청이 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런 멍청이들의 습성을 깨달은 데카르트의 멍청한 자아는 이렇게 말했다.
“멍청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멍청한 것이다.”
멍청함도 마찬가지다. 멍청함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자신에 대해서도 멍청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사용해야 한다. 아침에 했던 이 행동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거리들인가! 멍청함과 맞서려면 멍청함을 비난하고, 멍청한 것을 향해 멍청하다고 해야 한다. 상대가 멍청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멍청하다고 답답해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저 웃으면서 “이 멍청한 녀석아” 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 해주자. 진짜 멍청이라면 흠칫 하면서 조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알겠죠? 민주랑 관련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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