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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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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6,553회 작성일 20-05-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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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 선동이라고 한다. 교황청 산하의 포교성(propaganda)의 약칭에서 유래된 단어다. 익히 알고 있듯이 프로파간다는 대중의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이다. 정치적으로도 활용 될 수 있지만 상업적으로 사회적으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에서 이 프로파간다를 항상 접한다. 광고, 캠페인, 언론의 칼럼이 바로 프로파간다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훈련소에 가면 처음 1주일간 받는 정훈 교육 역시 국가에서 시행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프로파간다에 항상 객체로서 노출되어 있으며, 프로파간다의 주체로부터 끊임없이 이미지를 생성당하고 행동을 유도당한다. 아닌 것 같다고? 언론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시각과 기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알게 모르게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서 가지는 정치적 성향 역시 프로파간다의 일종이다. 국가에서 홍보하는 정책이나 시행 효과 역시 프로파간의 일종이다. 온 국민이 노출되는 국가적 프로파간다는 파급력이 크고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하여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그리고 프로파간다의 끝판왕은 그 유명한 요제프 괴벨스라는 인물이 되시겠다.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으로서 수많은 독일인을 자발적으로 전쟁으로 내몬 역사적인 인물이다. 국가사회주의와 히틀러의 열성적 추종자이자, 독일 전역에 라디오를 보급하여 선전-선동을 극대화한 전략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독일을 히틀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하여 대중을 선동하는데 그 좋은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고 그가 광신적이냐고 묻는다면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결코 성급하지 않았다. 주도면밀하고 얼음처럼 냉철하며 악마적이었다.” - 오토 야콥스

 

괴벨스 그는 이성적인 생각으로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자극하였다. 대중들에게 이념의 숭고함을 전달하고 마치 자신들이 깨어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대중을 나치의 충실한 신자로 만들어 갔다. 신자들이 열성적으로 섬기는 우상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은 정부의 충실한 악기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바로 언론 통제와 조작이다. 괴벨스는 치밀하게도 대중의 자발적인 지지에 기반하여 언론을 통제할 수단을 만들었다. 편집인 법률과 직업 명단을 활용하여 언론인과 지식인을 교묘하게 탄압하고, 언론을 통폐합하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하여 오락 영화를 생산하였다. 괴벨스의 선전 선동에 도취된 대중들은 독일 민족의 부흥을 위한 동기를 부여받고 열렬하게 나치를 지지하였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상식적이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은 나치 독일의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열성적인 지지자는 아니지만 나치에 반대하지 않은 대중들도 많았지만, 괴벨스의 스피커와 열성적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묻혀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모두 알다시피 2차 세계대전이었고, 천만이 넘는 독일인이 희생되고서야 자신들이 나치의 선전-선동에 이용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괴벨스의 탁월한 선전-선동을 본받아서 한국에서는 일제와 박정희, 전두환 같은 군사 독재자들이 익히 시행한바가 있다. 물론 그들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왜냐면 괴벨스와는 달리 힘으로 찍어누르기만 하는 언론 통제에 기반하여 선전 선동을 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경우 내선일체니 황국신민이니 대동아공영이니 하는 달콤한 말로 조선인들을 유혹했지만, 일부 친일적 지식인들을 제외하고는 효과적으로 조선인들을 선동하지 못했다. 민족 통합이니 뭐니 보다는 수탈에만 관심이 있었고, 조선인들을 2등 시민 취급하면서 전장에서는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민족적인 자긍심을 고취시킬 동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로 대표되는 군사독재 시절에는 일제가 가질 수 없던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전두환은 더해서 3s로 대표되는 오락까지 제공하면서 언론도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박정희 전두환도 국민들을 완벽하게 선동하지 못했는데, 괴벨스는 여기에 선견지명을 발휘하고 있었다.

 

“국민들에게 무조건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실수다. 적당한 낙관주의를 기본 태도로 삼으면서도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를 능히 받아들일 수 있다.”

 

대중은 늘 현실에 목말라하는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적당히 정보를 흘려 현실을 알려주면서, 자신들이 현실을 전부 알고 있다고 착각에 빠지게 하면서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을 이끄는 것이다. 아주 효과적이고 대중 친화적인 방법이다. 여기서 전두환식 대중 선동과 괴벨스식 대중 선동이 차이를 가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걱정할 것은 군사독재의 잔재들이 아니다. 이미 저들의 본질과 폐해는 온 국민들이 알만큼 알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할 존재들이다. 더군다나 80년대 대한민국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식의 군사독재를 치가 떨릴 만큼 경험해본적이 있지 않은가? 걱정 되는 것은 앞으로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나치식 대중독재가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는 자칭 어용지식인들이 열성 지지자들을 등에 엎고 사실과 희망을 교묘하게 섞어내면서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여기에 비판을 가하면 대안적 사실을 말한 것이라는 변명과 함께 친일파 토착왜구라는 논점일탈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소위 국뽕이라고 분류되는 한국 찬양 일색의 동영상들이 추천되고 있다. 무서운 점은 사실을 기반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외신을 적당히 인용하기 때문에 겉보기에서는 신뢰성 있어보이는 컨텐츠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민족주의적 자긍심과 인물의 우상성을 기반으로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단 한번도 대중독재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이런 것은 타국의 경우에서 반면교사 삼아도 충분하지 직접적으로 경험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반공이나 외치는 저들보다 낫다고 덮어놓고 기계적으로 표를 던지게 되면 그 부메랑은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 모르게 된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및 우상을 기반으로 하는 나치의 탄생을 멀리 있지 않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 - 노엄 촘스키

 

진정 깨어있고 싶다면 모든 사안에 대하여 현실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 독재의 폐해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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