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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극단적일까_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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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625회 작성일 20-05-0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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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스트>에서는 원래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던 한 여성이 등장한다. 미국 전역에 안개가 뒤덮인 가운데 마트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알 수 없는 정체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이 때 이 여자는 이 모든 것이 신에게 지은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았고 여자는 소외당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상황이 여자의 말과 교묘하게 일치해가면서부터 이 사람들은 점차 여성의 말을 믿고 따랐으며 믿지 않는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죽여 나갔다.

 

이는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줄기 중 하나이지만 영화를 벗어나 전 세계에 만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난민이나 종교 혹은 그 외 특정 사건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 일기 시작하면 몇몇의 사람들은 이를 확고히 믿는 경향이 있다. 구체적으로 2년 전쯤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왔을 때가 그 예일 수 있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는 다른 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심리학자 작가 김태형은 이런 일면에 ‘내 생각이 옳고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간주하며 타인에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는’ 극단주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극단주의는 최근까지 성, 세대, 지역, 학벌 등을 아우르는 모든 범위에 이르기까지 혐오, 광신, 배타성 등의 형태로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작가는 극단주의 개념을 현재 사회의 혐오와 관련한 문제들을 심리학적으로 진단하기 위한 일종의 매스로 사용했다. 저자는 기존의 극단주의 연구를 되짚어 보고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시대에 맞는 극단주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극단주의를 크게 나눠보자면 세 가지 정도로 구성된다. 자신의 신념이 옮고 상반된 것은 배척하는 배타성, 신념을 떠받들고 다르면 무조건 제거되길 원하는 광신, 신념을 다른 이들도 믿도록 강제하는 강요가 그것이다. 다만 단순히 타인을 배척하거나 자신만의 믿음을 고집한다고 해서 극단주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극단주의란 자신의 믿는 그 무언가를 타인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이슬람주의전체 IS가 떠오른다. 이들은 사회에 이슬람을 무조건적으로 퍼뜨려야한다는 사상인 이슬람주의를 이슬람교로 둔갑하여 사람들을 포섭한다. 포섭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사상을 이슬람교로 알고 자라고 이를 받아들인다. 어릴 때 심각한 인종차별을 겪거나 부모를 잃은 경험을 가진 분노에 쌓인 10대 아이들을 포섭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에게 힘이 없다고 느낄 때,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는 운명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극단주의자로 훈련되기 시작한다.

 

저자가 기록한 사항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기존의 극단주의 연구는 질적인 측면이 부족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가령 ‘판사들이 토론을 통해 보다 감정적인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와 ‘테러리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토론 이후 테러리즘을 더 지지하게 되었다’는 질적으로는 결코 다르다. 다만 기존의 집단 극단화 이론에서는 동일한 극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 생각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극단화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공허하고 의미 없는 설명으로, 질적인 측면의 극단을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저자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나, 해방운동을 했던 이들을 극단주의자라고 매도할 수 없다’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저자는 권위주의적 성격을 극단주의의 매개요인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 그다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았다. 저자는 특정 세력들이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 도식으로 바라보고 약자들을 경멸하는 사례들을 다루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 깊게 다루지 않는다. 심리학적 개념으로서 극단주의를 다룬다면 이 부분을 깊게 다루고 넘어가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또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작가가 극단주의의 요소로 배타성, 광신, 강요, 혐오를 제시하면서도 조작적으로는 엄밀하게 정의를 내리지는 않는다. 그는 인지-행동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심리학을 비판하는 스탠스를 취하지만, 개념에 대한 최소한의 조작적 정의가 없다면 양적으로나 질적인 사회과학, 즉 심리학의 전거는 되지 못한다고 본다. 독자를 고려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잘못 본다면 그의 공신력은 전문성이 아니라 대중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일수도 있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책이 대중심리학적으로는 더 부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 심리학 서적들은 사회 현상을 피상적으로 다루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들이 많았다. 반면 저자는 사회 현상이라는 고차적인 현상, 상위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서술은 자칫 심리학적 환원주의로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심리학이 아닌 사회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이 책의 스타일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심리학을 다루면서도 나름대로 사회를 적절히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책으로,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그러나 기존 심리학 서적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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