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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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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729회 작성일 20-05-0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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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풍경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가. 책을 통해 표현된 개디스의 주장을 스스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최근의 역사라는 단어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과거의 사실들을 가지고 최대한 단순화시켜 미래를 해석하려고 하는 사회과학적인 방법과 객관성을 거부하고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나누어 진다. 특히 전자는 과거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을 함수화 하고, 많은 독립변수를 등장시키고 종속변수를 최소화하여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개디스는 이 두 가지의 주장을 모두 부정하면서, 역사에는 당연히 진리가 존재하지만, 과거를 통해 정의된 독립변수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두 가지 주장을 질문으로 요약해 보면 ‘역사적 진실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축약될 수 있다. 개디스는 이에 대해 지도와 두 그림의 비교를 통해 은유적으로 설명한다. 있는 그대로의 크기로 있는 그대로를 모두 그려 놓은 지도는 의미가 없을뿐더러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단지 원하는 목적에 맞게 묘사할 뿐이다. 역사적 진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과거의 사실들을 통해 역사가에 의해 묘사된다. 하지만, 묘사된 역사 역시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얀 반 에이크의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과 파블로 피카소의 <연인들> 이라는 그림을 서로 비교해 보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 그림 모두 같은 주제를 가지고 그린 그림이지만, 전자의 경우 사진같이 정밀하게 묘사한 그림으로 그 시대에 어떤 물건들이 사용되며 어떤 옷을 입었는지까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후자의 그림의 경우 배경이 모두 삭제되고 극단적으로 추상화되어 주제의 본질에 직접 다가선다. 즉, 진리는 존재하지만 창작자의 생각에 따라 특수성을 지닐 수도 있고 보편성을 지닐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의 원리는 과학이 발전함에 다라 놀랍게도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은 현대물리학에서의 비선형적 과학 이론을 통해 자연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입증이 되고 있는데,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대척적인 관계에 있는 듯한 사회과학적 결론을 부정하는데 유연하게 사용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 흐름을 잘 짜인 독립 변수를 가진 함수라고 생각하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는 사회과학적인 결론에 대해, 저자는 역사라는 것은 물리학에서의 카오스 이론 같이 수많은 종속변수들의 상관관계로 이루어져 간다고 반박한다.


책을 통해 역사는 역사가들에 의해 묘사되지만 그 속에 진리가 존재하지만, 수많은 종속변수들의 상관관계 속에서 이루어 지기 때문에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결론은 역사는 현재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많은 사실들에 대한 역사적 시뮬레이션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상태를 자각하게 된다. 더 많은 역사들을 알수록 그리고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수록, 더 확실한 현재의 상태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설명한 역사의 불확정성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그래왔듯이 전에는 이랬기에 앞으로도 이렇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역사적 관성이라고 하자) 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단지 과거를 이해하고 시뮬레이션 된 역사 속에서 더 나은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끊임없이 숙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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