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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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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6,096회 작성일 20-06-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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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올더스 헉슬리 저

 



  한 평생 인종차별에 맞서다 돌아가신 위인들이 저승에서 가슴을 칠 만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완벽한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통제가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인종주의로 고통 받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우월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단 한 번도 완벽히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듯하다.

 

  우월감에 젖은 종족이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역사적으로 하루 이틀 그래왔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혼란함을 틈타 추악한 인간면모를 드러내는 것조차 시궁창 쥐와 인분이 곳곳에 들끓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일부 믿을 만한 소식통들은 현재 전혀 이해관계에 없는 일반 시민들조차 명품의류, 잡화, 생활용품 매장들을 무차별 약탈하고 있다고 한다. 공개된 영상들을 보면 준비한 바구니에 약탈품들을 가득 싣고 환하게 웃으며 뛰어가는 그들 중 일부는 희다. 약탈을 시위의 한 형태로써 표현하는 종족 역시도 스스로 상대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꼴과 다름없지만 현재 상황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인간 본성의 추악함에 환멸을 느꼈다. 완전한 자유가 아직 버거운 것인가 생각한다. 그러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1930년대 작품인 멋진 신세계는 2540년대의 이야기를 상상을 통해 다룬다. 그곳은 포드 (자동차) 신을 숭배하는 가상의 세계로써 포드의 후계자들은 자동화된 생산라인을 이용하여 자동차 대신 인간을 다섯 계급(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으로 나누어 찍어낸다. 그곳의 통치자는 인간을 등급에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입혀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한다. 상위 계급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할 목적으로, 하위계급은 단순 노동력을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공장에서는 태아에게 지식을 차등적으로 세뇌시켜 각 계급의 지능지수를 차등화 시켰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행복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세뇌를 당한다. 그들은 늙지 않는 얼굴과 신체, 그리고 대가없는 쾌락을 제공 받는다. 인간관계, 자유에 대한 욕망 등으로부터 불현 듯 찾아오는 심리적인 고통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소마라는 이름의 알약 한두 알이면 말끔히 지워낼 수 있다. 모든 것이 통치자 한 사람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세계지만 그 누구도 당신의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세계. 오히려 행복하다고 느끼는 세계. ‘멋진 신세계’는 그야말로 완벽한 유토피아다.

 

  신세계에 살았던 인간들 가운데 알파 계급의 똑똑한 몇 사람들은 여태껏 그들만의 사상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에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순간이면 무의식의 벽에 부딪혀 순식간에 생각이 사라지는 경험을 반복했다. 그 중 버나드는 같은 알파 계층의 사람들에 비해서 부족한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을 극복하기 위해 유일의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는 원주민 보호구역(통치자의 통치 범위 밖의 세계)에서 그의 상관이 저지른 부정행위의 증거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 증거를 신세계에 공개한다. 그 증거는 바로 야만인으로 불리는 '존'이었다. 존은 포드 시대의 도래 전 세상이 가장 빛나던 시기의 유산인 셰익스피어의 가치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잉태되었고 세뇌 교육도, 소마도 받지 않았다. 극중 존의 말은 거의 대부분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문장 가운데 한 부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가치란 높은 수준의 도덕성, 순결, 사랑, 극기정신과 같은 인본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의미하며 신세계에 대립되는 이념들의 집합체다. 존으로 인해 신세계가 한바탕 시끄러워지자 진실을 추궁하는 통치자 리치몬드에게 존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신세계의 사람들은 존의 일상을 추하고 역겹다 여기면서도 동시에 신기하게 여겼다. 존에게 있어서는 삶이란 온갖 유혹을 견뎌내려는 인내의 몸부림이지만 신세계 인에게는 알약 하나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감정들로 힘들어하는 존이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슬프게도 존은 그 무엇도 바꾸지 못했다. 바꿀 힘이 없었다. 매일 구경꾼들 앞에서 감정 조절의 일환으로 스스로 채찍질을 해댈 뿐 이었다.

 

  십 수 년 전 나는 ‘멋진 신세계’를 힘겹게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인간이 자동화 라인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그 문장 하나가 어린 날 거북하게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 신세계란 곳이 밉지만은 않다. 극중 분위기 연출을 위한 잡다한 장치(계급, 세뇌, 쾌락추구, 인간 제조 등)들을 다 차치하고 신세계 체제 유지를 위한 구동력만을 놓고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보다 못한 것은 없지 않을까. 나는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불만이 없다. 오히려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장본인으로써 자본, 자유의 힘을 굳게 믿는 사람들 중 한명이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추악함은 끊임없이 인류의 퇴보를 부추긴다. 시기, 질투, 복수와 같은 개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적 본성에 지나치게 치우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일련의 행동들은 자유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추악한 것들이다. 오히려 소마로 감정을 통제하거나 ‘빅 브라더’의 통치를 받는 사회가 우주의 제 3자의 입장에선 바람직해 보이는 사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로봇의 영양분으로 전락한 인간들이 매트릭스를 벗어나는 것 대신 매트릭스 내에서 안주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만약 그것이 싫다면, 극 중 존과 같이 고통 받을 권리마저 인수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절절히 느끼고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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