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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연구요원 4주 군사훈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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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6,994회 작성일 20-06-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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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유가 박탈된 삶

 지난달, 논산의 육군 훈련소에서 4주 훈련을 받고 돌아왔다. 필자는 전문연구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하므로 6주 훈련을 받고 1년 6개월을 복무하는 현역들과는 다르게 (감사하게도) 조금은 '덜’ 힘들게 훈련소에 다녀왔다. ‘한 달만 잘 버티면 되고 훈련 자체는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연 선배들의 말처럼 그곳에서의 훈련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영외로 나가는 훈련들은 모두 영내에서 진행이 되었고, 비말을 통해서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기에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액체가 나온다는 화생방 훈련도 매우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1년이 넘게 뚜렷한 연구 성과를 보이지 못해 각종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였기에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4주는 정신적으로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상당히 홀가분한 마음으로 훈련소에 입소했다고 할지라도 그곳은 그리 쉬운 곳이 아니었다. 훈련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 세끼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오와 열을 맞추어 식당으로 이동해야 했고, 이동 중에도 모두가 구령에 발을 맞추어 이동해야 했다. 타당한 사유가 아니고서는 밥을 ‘먹지 않을’ 권리도 없었다. 화장실도 혼자 마음대로 갈 수 없어 3명 이상이 같이 이동해야 했고, 정해진 시간에만 오와 열을 맞추어 이동한 다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평일 낮 시간에는 쉬는 시간이더라도 마음대로 눕지도 못하는 곳이었다.

모든 물품에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사회와는 다르게 그곳은 모든 것이 무료로 (실제로는 국민의 세금이겠지만) 제공되었다. 돈을 내지 않아도 의식주가 해결되는 곳이었지만,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다 온 나에게 그곳은 억압과 구속의 공간이었다. 모든 행동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한 번이라도 자유를 경험한 사람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런 생활을 한 달이 아니라 평생 해야 한다면 어떨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독재 정권 하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자유의 박탈이 뼈저리게 느껴졌기에 만약에 내가 그 상황이 온다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순응해서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쉬이 대답이 나오지 않은 내가 부끄러웠다. 자유를 추구하던 위대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에서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이라는 부분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년 6개월 이상 국방의 의무를 다한 모든 이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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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훈련소 건물은 학교와 닮았다

 큰 운동장에 조회대가 있고, 그 뒤로 국기와 4층 높이의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있다. 화단에는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가 심겨 있고, 건물과 화단, 운동장 바깥으로 높은 담장이 둘려 있다. 이 묘사를 보았을 때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리가 12년 동안 교육받았던 학교 건물이다. 하지만 위의 묘사는 훈련소 건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훈련소 건물을 보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훈련소 건물과 학교 건물이 참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동일한 구조의 건축 방식과 낮은 천장, 좁은 복도는 인간이 다양성을 추구하지 못하게 만들고 창의력을 억제한다고 한다. 육군훈련소(군대)의 특성상 상관에 명령에 복종해야 하기에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고 창의성을 억제하는 이러한 건축 구조가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 구조가 그대로 학교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12년 동안 학교에 다녔지만 알지 못했다.

 이러한 건축물의 형태가 아이들이 10년 이상 교육받는 학교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홍익대학교 교수이자 건축가인 유현준은 그의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학교 건축은 교도소다’라고 말했다. ‘수십 개의 똑같은 성장형 교실을 몰아넣은 하나의 네모난 교사동과 하나의 운동장으로 이루어진 건축 구조는 학교와 교도소가 동일하다’라고 말하면서 학교 건축의 문제를 지적했다. 학교와 교도소의 건축 구조는 내가 보았던 훈련소의 건축 구조와도 동일하다. 한 사람의 생활 방식과 생활 공간은 그 사람의 성향을 결정한다. 우리는 똑같은 모양의 건물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는 곳에서 12년 동안 교육받았으므로 타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건축물과 생활 방식은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을 만들 수 있을지언정,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을 만들 수 없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비슷한 아파트에서 살고 학교와 같은 억압된 건축 구조에서 살며, 뛰어놀 곳 없는 도심에서 같은 인종의 아이들과 자란다. ‘이런 획일화된 보편적인 삶의 공간이 어떤 천재들에게는 창의성을 죽이는 공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천재가 나오려면 다양한 교육과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주거공간과 사람의 형태가 필요하다.’라고 유현준 교수는 말했다. 지금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처럼 창의적인 무언가가 나오지 않은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공원과 인접한 곳에 학교를 위치시키고 저층 위주의 마을과 같이 분절된 학교 건물과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높고 다양한 천장 공간과 디자인과 같은 해결책을 통해서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아이들이 생활할 학교에서부터 점진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훈련소의 건물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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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훈련소였지만 나는 하루빨리 훈련소에 들어가고 싶었다. 연구실에서 내가 맡은 과제가 1년 이상 뚜렷한 성과도 없었으며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훈련소에 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연구와 실험에 대한 생각을 쉬고 싶었다. 프로젝트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빨리 연구를 진행해야 했지만, 연구를 지속할 동력이 떨어졌었다. 비록 그곳이 군대일지라도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실제로 훈련소에 있는 동안은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았다. 자유가 박탈된 삶이었지만 심적으로는 매우 편했다. 힘든 훈련이라고 하는 것들도 나에게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자유가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회의 시간보다 훈련소 안이 심적으로 편하긴 했으니까 말이다.

 훈련소 안에서 연구실의 내 일상이 어땠는지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크고 작은 실패가 있었지만 이렇게 공들이고 열심히 했던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동안 겪었던 웬만한 것들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했을 때 적당한 혹은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석사로 처음 들어오고 나서 받았던 프로젝트도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 목표였지만 가까스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수행하는 프로젝트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것임에도 성과를 거의 보이지 못했다. 계속된 실패는 내가 박사의 자질이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었다. 박사학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고 이겨내야 할 줄 아는 것이라고 배웠거늘 그때의 나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대학원생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지만,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에서 연구하는 나임에도 스트레스를 잘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은 내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훈련소에서의 한 달이란 시간은 정말 지겹도록 계속되었다. 사회에서보다 열 배 이상 느리게 시간이 가는 것 같았다. 얼른 나가 자유를 느끼고 싶지만,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훈련소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여기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것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왜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면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그곳은 내가 잠시 도망친 곳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혹은 평생을 보내야 한다면 그곳이 내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고 거기서 오는 힘듦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살아가고 이겨내야 할 곳은 연구실이고 훈련소는 잠깐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때때로 여행을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지만, 여행이 업(業)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그것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과 같은 의미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은 여기이다. 지금 이겨내지 못하면 어디로 도망가던지 결국 피할 수 없으리라.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상을 살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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