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아몬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5,713회 작성일 20-06-04 09:15

본문

아몬드

 

 

 

 “몰랐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감정은 사람을 매우 지치게 한다. 하지만 감정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지난 4월, 영화 ‘her’ 에 대한 감상에서도 그랬듯이 감정이 없다면 그것은 로봇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사랑을 주고받고,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고등한 동물이기 때문에 권태감까지 느끼다가 이 감정에 못 이겨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에 대해 각자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감정은 뇌 안의 편도체에서 이루어진다. 고작 아몬드만한 크기의 편도체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소설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윤재’에 대한 이야기다. 윤재는 어렸을 적에 웃지를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발달이 느린 거려니 했다. 그런데 뭔가 아기의 눈빛이라기엔 깊고 잔잔했다. 어느 날은 뜨거운 주전자에 무심코 팔을 뻗었다가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윤재가 그 일 이후로 주전자를 무서워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윤재는 여전히 빨간 주전자에 손을 뻗었다. 지능이 낮은 것은 아니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진단을 받고나서 윤재의 엄마는 본격적인 감정 교육을 시작한다.

 

차가 가까이 온다 -> 몸을 피하거나, 가까워지면 뛴다.

상대방이 웃는다 -> 똑같이 미소를 짓는다.

*참고 사항: 표정의 경우, 무조건 상대와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편함

 

 계속되는 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감정은 배울 수 있었지만 복잡한 상황과 관계에서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엄마는 뒤돌아 눈물을 훔치는 날이 잦아졌다.

 

“복잡한 것까진 몰라도 기본은 꼭 알아야 해. 그렇게만 해도 조금 메말랐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정상 범주에 속할 거야.”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말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 따위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물론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엄마의 행동 강령 중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라는 덕목을 입이 닳도록 외운 덕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에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엄마는 온 마음을 다해 윤재를 위하고 있다. 여러 병원을 오가며 의사와 싸우기도 했으며, 아몬드가 편도체에 좋다며 먹이기도 했고 그러다가 지쳐 울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서 윤재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을까? 차라리 윤재의 눈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것, 아무래도 괜찮다는 느긋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더 사랑일 때가 있다. 감정은 느끼는 주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어렵기도 하다.

 

 사랑의 본질은 가슴 아픈 것이 아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습이 사랑을 보여준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곤이도 마찬가지였다. 윤재의 할머니와 엄마가 괴한의 습격을 당해 윤재 홀로 남겨졌다는 비극적인 내용을 뒤로하고 등장한 ‘곤’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낯선 중년의 남자가 윤재에게 찾아와 아들행세를 해줄 수 없겠냐고 부탁한다. 사랑하는 아들이 실종된 지 10년이 넘어 그의 아내는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지만, 결국 찾은 아들은 소년원에 있는 비행 청소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윤재는 죽어가는 그의 아내 앞에서 아들 행세를 했고, 며칠이 자니고 곤의 엄마는 숨이 끊어진다. 그 후, 학교에서 곤과 윤재의 만남이 시작된다. 곤은 윤재를 죽일 듯이 패기도 했지만, 윤재는 그런 것에 분하거나 슬퍼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곤은 감정이 없는 윤재를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윤재가 처음이었기에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곤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게 방황을 한 곤을 오랜만에 본 아빠는 곤을 어떻게 갱생시킬 것인가에 대한 생각부터 했다. 그가 곤이를 위하는 마음은 사랑일지 모르지만, 곤이는 그렇게나 기다렸던 아버지가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는 것이 슬프기만 하다.

 

 결국 윤재에게도 곤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이 순진무구한 청소년 둘의 사심 없는 대화가 서로의 감정을 깨우기도, 치유하기도 한다. 그렇게 소설은 기나긴 어둠을 지나 밝은 삶으로 들어서는 둘을 암시하며 끝난다.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에 지치게 되는지, 또 좋은 대화, 좋은 감정의 교류라는 것이 무엇인 지 이 책을 통해 고민하게 된다.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일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운동가인 아베 피에르가 엠마우스 운동을 벌였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베 피에르는 집 없는 사람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엠마우스 운동 중에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릴 적 고아가 된 이야기, 고생스러운 삶을 전전했던 이야기. 가정을 이뤘지만 아내가 집을 버리고 떠난 이야기를 다 듣고는 아베 피에르가 이렇게 얘기한다. “아 듣고 보니 죽고 싶은 그대의 마음을 알겠소. 그런데 기왕 죽기로 했으니,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지 않겠소? 내가 집을 짓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오.” 나중에 이 남자는 엠마우스 운동의 초창기 멤버로서 활동하였고 회고하듯 이렇게 얘기한다. “그 때 아베 피에르가 나와 이 지옥같은 삶에 조언을 몇 마디 했다던가 돈 몇 푼을 쥐어주었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슬픈 감정에 취약하다. 어떻게든 슬픈 감정을 걷어내기 위한 행동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아베 피에르처럼 슬픔의 본질을 먼저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조금 더 느긋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본질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