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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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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721회 작성일 20-06-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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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스트 자대생들은 알겠지만 우리 학교에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주어진 주제로 학생들이 수필을 작성하고, 그 중에 심사위원들에게 높게 평가 받은 수필들을 시상하는 공모전이 있다. 하지만 수필 공모전의 존재는 알아도 학교가 매년 뽑힌 수필들을 모아 책을 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학생들이 쓴 수필을 모은 수필집을 누가 찾아서 보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바라고 있는 학부모들에게는 꽤나 잘 팔리는 모양이다. 물론 같은 학교 동문 입장에서도 이 수필집은 학교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어떤 경험과 삶을 겪어 왔는지를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창구 역할을 하기에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카이스트에서 나온 많은 수필집 중 '과학하는 용기'는 학생들이 그동안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경험했으며,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기어냈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전부 좋은 집안에서 영재교육을 받고, 모범생으로 공부만 하다가 어려움 없이 졸업하는 것 같지만, 수필책에서 읽은 학생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다양한 역경과 고난을 건너온 삶의 기록들이었다. 책에는 가볍게는 여자친구와의 이별이나 실험에 대한 고뇌도 기록되어 있었고, 무겁게는 가족의 부고나 가난한 집안사정 등의 이야기도 실려있었다. 각자가 겪은 상황과 어려움은 달랐지만 공통적인 것은 저자들 모두 결국은 그 어려움을 이기어내었다는 사실과, 그 고난에 대해 이제는 대담하게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니체가 말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말이 들어맞는 일이다. 몇달 전에 읽었던 C. 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를 통해 배운 것처럼, 고통을 이겨낸 우리는 동일한 고통을 견디는 용기와 공감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나에게 있어서 이정표가 되는 것은 '니카라과'이다. 니카라과는 나에게 여러가지 아픔과 어려움을 주었기 때문에 밉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추억과 경험을 준 나라이기 때문에 미운 정이 있는 곳이다. 정서적으로도 학업적으로도 예민한 시기에 갔던 니카라과 이민이었기 때문에 니카라과에서의 초기 생활을 어려움 투성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앙적으로, 학업적으로, 그리고 사람으로서 성장할수 있었기 때문에 니카라과와의 기억은 적어도 행복하게 끝을 내었다. 물론 그 시절 겪었던 사건 사고나 질병, 인종 차별 등을 생각하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8년 전 내가 학업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선교사로 니카라과에 계셨기 때문에 니카라과라는 단어는 내 귀에 지속적으로 들릴 수 있었지만, 이미 떠난 나라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부모님이 계시는 장소' 이외에는 큰 의미를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부모님을 통해 니카라과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마수가 남미까지 뻗어지면서 니카라과도 예외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은 의료 환경이 상당히 낙후되어있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대한 선진화 된 방역 체계나 다수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의료 인력이 부족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니카라과도 예외는 아닌듯 싶다. 독재국가인 니카라과는 세계 언론에 본인들의 피해 상황을 상당히 축수시켜 발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바이러스가 창궐해 부모님께서 알고 있는 지인 중에서도 환자들이 속출하고, 심지어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니카라과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에 있는 모든 공항과 항구를 폐쇠했고, 이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니카라과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시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니카라과를 떠날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챙겨야하기 때문에 니카라과에 남아계시겠다고 하신다.


  나는 나름 부모님의 신앙과 비전, 그들의 꿈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면 니카라과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니카라과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이 내가 그 나라와 사람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까? 그걸 떠나, 과연 자신의 사람들과 자신의 가족들을 챙기는 것이 정말 이기적이기만 한 생각일까? 나에겐 여전히 니카라과 전체의 아픔보다 나의 부모님 두분의 안위가 더 걱정되고, 이런 내 생각이 비도덕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비단 나만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국내 정치를 보든 해외 소식을 보든, 코로나라는 어려움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고, 자신의 나라가 먼저가 된다. 혼란을 틈타 홍콩을 집어삼킨 중국이든, 중국을 공격해 정치적 이득을 보는 트럼프든, 자신의 편의 비리를 모르쇠로 넘기는 집권여당이든, 내게는 다 이기적인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인종차별을 질타하는 미국의 흑인 시위조차도, 그들의 폭력적인 행동과 그로인해 피해를 보는 아시아계 사람들을 보면서 그저 이기적인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뉴스들이 더럽고 치사하게 보이는 이 시기와 대비되게, 학생들의 수필은 너무도 때묻지 않고 순수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절대 그들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려움을 자신의 지인들과 더불어 함께 이기어내는 모습을 보였고, 도움을 주었던 이들을 향한 감사의 인사를 그들의 수필에 꼭 기록하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함께하는 이들과 더불어 살며 서로 도와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독려를 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면서 나도 다시금 순수한 마음을 가지는 기분이다. 미국의 뉴스에는 흑인 시위대를 안아주는 백인 경찰의 용기와 흑인 아이를 지키려 팔을 뻗은 백인 소녀의 순수한 모습이 감동을 준다. 이러한 순수한 감동이 무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한다. 또 국내에서나 국제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갈등과 충돌에도 이러한 순수함이 회복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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