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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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Ther Order of Time)은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쓴 '시간'에 대한 과학적, 철학적 접근을 담은 책으로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이탈리아 태생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로서 양자이론과 중렬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 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로,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카를로 로벨리가 최근에 쓴 작품으로 기존에 출간된 <모든 순간의 물리학>,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라는 책에서 양자중력이론 관점에 바라본 물질, 에너지, 공간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면, 이번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는 물질, 에너지, 공간에 이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 책 또한 양자중력이론이라는 무리가 우주와 현상을 보라보는 하나의 창, 시각에 서 바라보는 시간의 의미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 새로운 시각에서 우주와 우리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흥미진진한 상상을 제공해준다.
'시간' 이란 무엇인가? 고전역학의 시대를 지배하는 뉴턴(위대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간이라는 것은 't'로 표현되는 절대적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고,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은 그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위에서 위치하는 개념이 된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드리는 과거,현재,미래를 만들어내게된다. 즉, 사물이나 사물의 변화와 상관없이 '진짜시간'은 흐르고, 모든 사물이 멈추고 우리 영혼의 움직임 마저 얼어붙어버려도 이 '진짜시간'은 냉정하게 그리고 동일하게 계속 흐르는 것이다. 이것은 뉴턴 이전의 또다른 천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개념과는 정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랑 상대적인 개념으로 시간은 사물의 변화에 맞춰 우리의 상황을 규정하는 방식이자 날짜의 변화와 계산에 맞춰 우리 자신을 위치시키는 방식이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게된다. 즉, 시간은 변화의 척도인 것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것인가? 오랜 시간동안 우리는 뉴턴의 세계에서 살아왔다. 't'로 표현되는 시간이라는 변수 속에서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 (혹은 변화하는 지)에 대한 설명을 위한 방정식을 써왔다. 다시말해 '시간 속에서' 사물이 어떻게 움직일 지가 우리의 관심사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뉴턴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절대적이고 실재하는 수학적인 뉴턴의 절대적 시간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시간은 이 세상, 모든 현상과 사물과는 전혀 무관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또 다른, 혹은 앞의 두사람을 뛰어 넘는 천재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진다.
아인슈타인의 관점에서 시간이라는 것은 단순 시간의 개념보다는 장(Field)의 개념이 생긴다. 즉, 시간이 따로 떨어진것이 아닌 시공간의 개념이 생기게 된다. 시공간이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곧 시공간이다. 중력장은 매끄럽고 평평한 평면일수도 있고, 이러한 평평한 평면의 시공간이 바로 뉴턴의 시공간이 된다. 이러한 시공간의 개념은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게 된다. 질량이 큰 물체가 있으면 그곳에 더 많은 중력장이 생겨 시간이 더 느려진다. 시간이 더 적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대적 시간 개념과 뉴턴의 절대적 시간 개념이 합성된 논리가 된다. 더 이상 시간은 물질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 또한 절대적일 수는 없었다. 바로 이듬해 양자역학이 등장했다.
양자역학의 가장 특징은 무엇일까? 이공계관련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겠지만,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는 없으나, 양자역학이 가리키는 바는 선명하다. 양자성, 바로 입자성이다. (그리고 확률성, 배타성) 카를로 로벨리는 바로 이점에 관심을 가진다. 양자역학이 옳다면, 중력장도 양자화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보편적 시간은 무스히 작은 고유시간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각각의 고유시간은 양자처럼 각자가 요동을 치면서 구름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불확정성측면에서 시간을 측정하게되면 정확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조각난 시간의 중첩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모든 지점에서 요동치게 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양자역학의 성격처럼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불명확해진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전과 후에 모두 발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양자중력이론의 고차원적인 여러한 가정과 논리를 배제하더라도, 이러한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은 시각을 일깨워준다. '현재'는 무엇인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과거에서 와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가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은 옳은 것인가?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에서 바라보는 현재는 모래시계의 중간이며, 과거도 무한한 확률이 존재하고, 미래에도 무한한 확률 이존재하며, 현재는 이 가운에 한 부분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러한 시공간의 모래시계는 하나가 아니다. 수많은 모래시계가 있고 이것은 중첩이 발생하여 현재라는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게 된다. 책에서 예를 든 지구에서 4광년 떨어진 프록시마b의 여동생의 일화 또한 흥미롭니다. 내가 여동생을 보고 있는 망원경이나, 무선통신은 내게는 현재이나, 여동생에는 현재가 아니다. 4년전과거이고, 여동생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프록시마b의 여동생에게는 현재에 있는 내가 아닌것이다. 심지어 프록시마b의 지금의 시간에서 하는 여동생의 행동의 지구의 내가 느끼는 4년후의 여동생의 행동일 것인가? 실제로는 그것은 여동생의 시간에서는 지구의 10년후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여동생은 이미 지구에 돌아와 있을 수도 있다. 현재는 하나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우주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의 시간은 정말 모호해지게 되는 것이다. 의미없는 물음이 되고, 현재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과 같아 진다.
우리는(인간은) 늘 과거를 회상하고(후회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기대를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네 삶에서 과거는 이미 정해졌고, 현재는 지나가고 있으며,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리고 '내'가 해야할 연구와 업무에 할당된 시간을 어떻게 해봐도 늘 부족하다.)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의 광의적 시각을 좀 더 확장하여 방정식 속의 't'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다소 전문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가진 책을 읽으며 보편적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지만, 물리학에서 찾고자하는 진리의 과정이 다소 추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으나, 그러한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개인의('나'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건 늘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와 함께, 현재(책에서는 모호한 의미일 수 있으나)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균형을 이루어 발전적인 성장을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주적 관점만 바라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너무 티끌과 같아 회의감이 들것만 같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불안하고 좌절하는 모든 부분들이 그 우주적 관점에서는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지나가는 (혹은 확률의 일부분인) 하나의 지점에 불과하기에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기도 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만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의 결과로 시간이 만들어지며, 그 시간은 우리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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