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사람 - 김영하
페이지 정보

본문
이 세상에서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단 두 명 뿐인데, 그 한 명이 나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 한 명이 세상을 떠나지 않더라도 두 명이 서로 싸워 의절한다면, 그 둘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게 될 것인가.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세상에서 오직 둘 만의 언어로 대화하던 사람들이 한 명을 죽음으로 떠나보내고나서 쓰게 되는 그 동안의 감정을, 주인공의 담백한 편지글로 표현하고 있다.
현주가 어릴 적 부터 가족 내에서 소통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빠이다. 이는 현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빠가 그렇게 길들여놓은 탓이기도 하다. 나머지 가족들은 현주만을 싸고 도는 아빠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빠에게서 받고 싶은 사랑을 포기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주는 아빠가 원했던 장래희망은 아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여 살아가고, 나머지 가족은 미국에서 생활하게 된다. 현주는 혼자 곁에 남아 아빠를 돌본다. 나중에는 도망치고 싶어져서 가족이 있는 미국에 가기도 했지만, 평생동안 아빠를 위한 삶을 살아온 현주가 병상에 있는 아빠를 떨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아빠는 돌아가셨고, 발인이 되어서야 온 가족이 모인다.
이 책의 현주와 아빠의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넘어선 듯 하다. 그러나 굳이 이런 관계가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가정이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를 생각해본다면 현주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부모님을 포함한, 우리 가족은 우리들만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앞으로 나는 누구에게 의지해야하는지, 부모님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지에 대하여 걱정을 할 것이다.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나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은 사람이 세상에 없다면, 남겨진 사람은 살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처럼, 산 사람은 또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의 현주의 모습을 보면 아빠를 여의고 난 후에는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것 처럼 보이지만, 편지글의 말미에서는 그럼에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또다른 희망을 보이고 있다.
“언니, 전 이제 괜찮아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도 알아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게 막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좀 헛헛하고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예요.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탓이겠죠.”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바로 저 문단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오직 두 사람” 외 6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내용은 다르지만 내용 말미에서 절망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싹튼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상실한 사람들에게 이전처럼의 완전한 회복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실을 딛고 일어서 또다른 희망을 찾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전글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20.04.01
- 다음글불평등의 역사 - 발터 샤이델 20.04.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