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십멘토링 - 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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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유튜브의 비디오 머그 채널에서 한 흥미로운 영상을 봤다. 해당 영상에서는 지난 일요일 (3월 29일)에 예배를 드렸던 두개의 다른 교회를 조명하고 비교했다. 한 교회는 전광훈 목사가 담임하는 서울제일교회, 다른 하나는 조희서 목사가 담임하는 서울씨티교회였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서울시가 집회금지명령을 내린 상황에서, 경찰과 공무원이 나와 제지했는데도 거칠게 반응하며 교인 수백 명이 예배를 드린 서울제일교회. 그들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모습에 많은 기독교인이 실망했고, 또 국민들은 그들을 향해 질타와 비판을 던졌다.
같은 시각, 서울제일교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울씨티교회는 극단적인 대치 없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예배를 진행했다. 서울씨티교회는 인근 학교 운동장을 빌려 교인들이 차를 탄 상태로 모여 FM 라디오로 설교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이른바 '드라이브인 예배'를 선보였다. 교인들의 예배에 대한 갈망과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안전조치를 모두 잡겠다는 서울씨티교회의 대안에 대해 많은 사람은 긍정적인 댓글을 달며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사태라는 ? 사건 가운데 교회들은 자동차를 탄 상태로 모이는 '드라이브인 예배' 뿐 아니라 실시간 영상 송출을 이용하는 온라인 예배, 교회에서 나눠준 지침을 따라 가족끼리 예배를 드리는 가정예배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정부의 정책에 동의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선에서 예배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온라인으로 드려지는 여러 형태의 예배를 불편하게 여기며 이러한 예배가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결국 본인이 다니는 교회가 어떤 형태의 예배를 지향하고 있든 상관없이, 현재 모든 개신교인은 과연 '예배'라는 것은 무엇이면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대면하게 되었다. (어쩌면 성당이나 사찰에서도 비슷한 질문 가운데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기독교는 1960년대 이후 전통적 기복신앙에서 온 '물질적 축복'에 대한 갈망을 타고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계파와 나라, 지역을 막론하고 중대형교회를 지배했던 '성공의 복음'은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과 같은 책들이 국내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일조했고, 기독교 어머니들은 그들의 자녀 성공을 위한 기도로 우리나라의 새벽을 깨우곤 했다. 물론 그들의 신앙이 이단적이라던가, 성경에 위배되는 그릇된 생각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표면으로 드러나는 물질적 성공과 교인의 숫자가 지배하는 대형교회의 모습은 성경과 비교해 너무도 왜곡되어 있었고, 우리나라 교회들의 '깊이 없는 성장'에 크게 일조하고 말았다.
사실 기독교가 시작되는 1세기경 초대 교회들은 모두 가정교회로 시작된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면 세웠던 교회들은 모두 개인 집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였기 때문에, 정해진 건물이나 형식이 '교회'가 되지 않고 성도들의 모임 그 자체가 '교회'가 될 수 있었다. 가정교회는 몇 개의 이웃 가정들이 모여서 이루는 공동체였기 때문에 서로의 삶과 행실을 잘 이해하는 공동체였고, 또한 예배의 자리가 삶의 자리였기 때문에 예배를 통해 얻은 모든 교훈과 변화를 삶에 자리에서 적용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따라서 초창기 기독교의 예배는 세상과 구별된 황홀경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신비로운 밀회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 구조와 삶의 자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리와 선하심을 향한 경주를 달려 나갈 원동력을 얻는 자리였다. 그래서 예배는 단순히 모이기 위한 모임이 아닌, 흩어지기 위한 모임이었다.
사울이 기독교를 박해하자 온 로마로 흩어졌던 2천 년 전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과 오프라인 예배가 멈춰지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 현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묘하게 닮아 보이면서도 다른 까닭은, 우리는 초대 기독교인들과 달리 '흩어져 드리는 예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늘 많은 사람이 모이고 웅장한 사운드와 불같은 설교를 들어야 만족하던 기독교인들에게 가족끼리 (혹은 혼자서) 성경을 읽고, 작은 소리로 찬양을 부르는 현 상황이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온라인 예배에 대해 불평이 많은 것 또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예전처럼 교회 사람들을 만나 함께 교제하고, 찬양팀 사람들과 밴드 사운드를 맞추고 찬양을 연습하고, 성경 공부 모임에서 토론을 하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를 통해 한국 기독교는 '흩어져 드리는 예배'를 배워야 한다. 거대한 건물과 체계화된 시스템 없이, 하나님과 성경책만으로 은혜받는 '흩어져 드리는 예배'를 배워야 한다. 주중에는 버러지와 같은 삶을 살다 일요일에만 성스럽고 구별된 사람이 양 가면을 쓰고 모이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있는 생계의 자리에서부터 구별된 삶을 사는 '흩어져 드리는 예배'를 배워야 한다. 나는 믿는다. 교회 중 소망이 없어 보이는 곳도 많지만, 여전히 많은 교회가 흩어져 드리는 예배를 익히고, 형식과 관습을 벗어 진실한 삶의 예배를 드리게 되는 그날이 오길 소망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요한복음 4장 2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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