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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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로 헤르만 헤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다.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하는 새는 데미안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를, 알은 싱클레어의 세계라고 이해를 할 수 있다. 알을 깨고 나온 싱클레어는 마지막으로 아브락사스를 향해 날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아브락사스는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먼저 아브락사스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면 선과 악, 남성성과 여성성, 빛과 어두움 즉 두개의 다른 속성을 동시에 지닌 신이라고 한다. 신은 전지전능하며 우리가 사는 세계가 곧 신이며, 세계의 창조 혹은 파괴 역시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편지에 담겨있는 새는 알이라는 자신이 존재하던 세계를 파괴하고, 알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알의 내부와는 전혀 반대 속성인 알을 둘러싼 바깥 세계를 대면한다. 이것은 어쩌면 알을 깬 싱클레어 스스로 서로 다른 속성이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한 것이며 이런 세계를 만든 싱클레어 자신이 아브락사스임을 의미하는 것, 즉 알을 깨는 행위는 성장을 하기 위한 새의 모습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여기서 성장이란 단순한 곤경을 넘어서기 위한 모습이라기 보다는 ‘나’라는 자기자신을 직면하여 내면의 성장을 이루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헤르만 헤세는 왜 ‘자기자신을 직면하는 것’과 같은 심오한 의미의 성장을 요구하고 있는 걸까? 데미안이 집필되던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유럽은 자유와 사랑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생긴 연대와 패거리가 아닌 공포심과 강제적인 압력에 의해 생기고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파스테르나크의 대작인 ‘닥터지마고’의 주인공인 유리 지바고가 혁명에 대한 조건으로 말한 의미를 생각해보면 ‘자기자신을 직면해야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유추 할 수 있다. 진정한 유대관계, 서로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개개인이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데미안에서 등장하는 카인의 표식을 받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 다른 인종,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화로운 모임을 이어 갈 수 있는 이유는 모두 각자의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직면하여 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만 알을 깨고 나와 아브락사스가 되기 위한 성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싱클레어는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등의 다양한 작중 인물을 적재적소에 만나면서 스스로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직면하여 내면의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그 누구도 싱클레어의 주변에 남아있지 않는다. 특히 “그는 한동안 나를 인도했지만, 나는 인도자인 그를 넘어 그를 두고 떠나야했다.” 이라는 구절은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와 절교를 하는 장면에서 싱클레어의 심정을 보여준 문장이다. 자신의 성장을 도왔던 피스토리우스를 떠나는 싱클레어의 심정은 가슴 아픈 것이지만,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통해 성장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조력자가 필요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홀로 나아가야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절 나는 독특한 피난처를 발견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우연 덕분이었다.
그러나 본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기필코 어떤 것이 필요하게 되면 그 필요 불가결한 것을 발견하게 마련인데,
그런 것을 가져다 주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것을 갈구하는 그 사람 자신이다.
그 사람 자신의 욕구와 필연성이 그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간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알안에 존재하는 싱클레어와 같다. 알에서 나오기 까지 우리는 살고 있던 세계만 알고있을 뿐 알 외부의 세계의 존재 조차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알을 깨부수고 나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선과 악이란 것을, 밝음과 어두움이란 것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공존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닳음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으며 자신이 알지 못한 세계를 항상 궁금해한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은 이분적일 수 없이 항상 공존하는 것이고 서로를 통해 명확하게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미 처해있던 세상에서 벗어나 자기자신을 직면하여 내면의 성장을 이루기 위한 욕구와 노력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으며, 완전한 존재인 아브락삭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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