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만이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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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만이 무기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저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책을 읽더라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얻게 되는 정보의 양과 질은 달라질 것이다. <지성만이 무기다>라는 책이 바로 그 방법론을 제시해주고 있다.
'정독'이 사람의 인식을 변화시킨다.
정독은 한 글자 한 구절에 눈길을 주고 거기에 쓰여 있는 모든 내용을 알고자 하는 읽기 방법이다. 즉 지명이 나오면 지도를 펼치고, 인명이 나오면 인명사전을 펼치며, 모르는 도구나 식물이 나오면 도감이나 백과사전을 찾아 용어의 의미를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책의 여백에 기록하고, 표현의 의미를 조사하며, 종합적으로 문체, 즉 문장의 특징을 토대로 작성된 글의 사상적 핵심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시대 배경까지 캐내는 것이 바로 '정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독은 과거 자신의 안이하고 자발적이지 못했던 일 처리 방식이나 사고방식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또한 비결도 없고, 목표도 없고, 보수도 없이 홀로 어둠 속을 걷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뭔가에 의지해 이미 누군가가 깔아 놓은 길만 걸어온 자신, 정해진 재료를 적당히 분배 받아 만들었으면서도 마치 창조한 것처럼 생각하는 자신, 무슨 일이든 정해진 틀과 정답 혹은 정통과 최고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신, 틈틈이 시간을 내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 등 이 모든 자신이 세속적이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었던 정밀한 독서 방식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크게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본론>을 정독하면 마르크스가 얼마나 헤겔 철학에서 채용한 세계관을 곡해했는지 알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짧은 논문을 정독하면, 조사하며 읽어 가는 도중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괴테, 니체, 비트겐슈타인, 헤세에게까지 연결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그들의 사상적 근원이 리그베다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 성전인 네 가지 베다 가운데 하나 - 옮긴이)에 있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다. 학교에서는 단순한 해설과 사상의 계통도로 각 인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으로 끝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무기질적인 모양과 같아 통째 암기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독하면서 스스로 조사하다 보면 기억이라는 노력 없이 깊은 이해를 통해 그 내용이 자신의 내부에 새겨지게 된다. 요컨대 정독이란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책이라는 나뭇가지를 응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사상과 문화로서의 나무 전체를 조감하는 읽기 방식이기 때문에 정말 성가시게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요령 좋은 읽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1년에 걸쳐 정독한다면 다음에 읽는 책부터는 꼭 정독해야만 하는 부분이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그 저자의 독자적인 사상에 대한 조사 정도만 필요하게 되고 책을 읽는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결같이 일반적인 독서 방법만 따르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풍부하고 정확한 지식을 단기간에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만약 한 권도 정독하지 않고 두 권째 책을 읽을 경우 첫 번째 책과 똑같이 낮은 수준의 이해력으로 일관할 것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많은 지식을 흡수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으며, 책을 계속해서 오독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게 된다.
'고전'과 같은 질이 높은 책을 읽는다.
고전을 읽기 힘든 이유는 페이지 수가 너무 많아 그만큼 시간을 낼 수 없고, 시대 배경이나 토대가 되는 전제가 현대와 너무 차이가 나며, 너무 어려울 것 같다로 나눌 수 있다. 고전이 너무 두꺼워서 읽기 힘들다면 몇몇 부분만 골라 읽으면 된다. 다만, 부분적으로 읽고 나서 느낀 것만으로 전체를 예상해서는 안 되고, 부분적으로 읽다가 점점 흥미가 생기면 그 부분이 있는 전체를 읽으면 된다. 그 챕터가 재미있으면 다른 재미있을 것 같은 챕터를 골라 읽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건너뛰어 읽다 보면 마침내 전체를 읽게 될 것이다. 고전의 배경이나 토대가 되는 사상을 이해하려면 고전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부록의 해설 같은 것을 읽으면 훨씬 좋다. 만약 미리 책의 해설을 읽었는데도 내용을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구절이나 용어를 사전을 찾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등 꼼꼼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연대나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역사 연표 등을 조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해가 안 된다면 그 고전의 배경에 크게 걸쳐 있는 <성서>, <코란>, 불교 경전 등 종교 서적에 들어 있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먼저 종교 서적을 읽고 고전을 읽는다면 한 층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세계문학이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언제까지나 읽히는 이유는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의도적으로 맞춰 쓴 오락 취향의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문학에는 인간 자체가, 즉 보편적인 인간성이 묘사되어 있고 그 보편성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에 있는 우리는 아마도 자신이라는 존재로 온전히 살고 있지 못하고 가짜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은 추상적이고 부분적이며 기술적일 것이다. 일을 통해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지만 마음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상대의 역할과 지위, 역량에 걸맞은 흥정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관계하게 된다. 그 경우 상대의 인격은 도외시된다. 왜냐하면 일의 중심은 경제이며, 결과적으로 최대한 많은 돈을 모으는 목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돈에 의해 대부분의 일이 해결되고 처리된다. 치유와 즐거움마저 판매되고 있어 온갖 종류의 즐거움을 사는 것이 일상이다. 세계문학에서 묘사되는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살아 있는, 허식이나 속임수가 없는 개개인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이 지닌 다채로움과 변용의 불가사의함을 응시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공부를 하는 것보다 세계문학을 읽는 편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이제 와서 현대인의 인공적인 가짜를 모두 집어던질 수는 없지만, 세계문학을 읽음으로써 인간과 세상의 심연에 숨어 있는 신비를 알고, 진정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온갖 연구와 지성에 반드시 필요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은 항상 가설이거나 진리에 대한 근사치이므로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에게 흥미가 있고,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책을 읽는다.
"세계의 역사를 잘 살펴보자. 전쟁의 연속이 아니던가. 전쟁 사이사이 어쩌다 아주 짧은 평화가 있기는 했지만, 그 후로는 온통 분쟁, 사변, 전쟁뿐이다. 이 전쟁들은 항상 각기 다른 인간 종족이 자신들의 생활 공간을 요구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전쟁이란 반드시 지배와 복종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그것이야말로 태초부터 있어 왔던 힘, 즉 강한 자가 이기고 살아남으며 약한 자가 패배하고 소멸하는 자연도태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인간 종족의 자연도태가 전쟁을 매개로 하여 실행되고 있다." (127쪽)
이 글은 논리적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옳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글을 보거나 이런 내용의 연설을 들으면 자신의 경험과 식견이 미치지 못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참으로 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방금 전의 전쟁론은 나치스가 대중에게 반복해서 말했던 내용이다. 상대의 이야기가 새까만 거짓이라는 것을 간파하려면 스스로 세계사를 공부하고 종족과 자연도태의 올바른 의미를 조사해야만 한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고루 섭렵하면 서서히 특정 책의 논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인간을 알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봐야 하듯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동서고금 책을 펼쳐 보는 것이 좋다. 어떤 경우라도 그 책의 논리가 전부 옳을 수는 없다. 어느 책 한 권의 전체 내용이 모두 옳거나 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리를 말하는 경우도 결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책 역시 모든 게 정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책에 있는 내용은 항상 가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거나 진리에 대한 근사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세상에서 개념과 똑같은 정확한 원을 그릴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기준을 가지고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기준이 아닌 이 책이 자신에게 흥미진진한가 혹은 새로운 사고방식의 지평을 열어 줄 수 있는가라는 개인적인 감성이나 가치관을 중시해야 한다.
독서의 목적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화폐가 여러 장소에서 가치를 갖게 된 현대에 와서 인간은 가치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하고도 그것이 정말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만연해 있다. 예를 들어 정부와 공무원은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성질의 대상을 비교하는 이상한 금전 환산을 솔선하여 수행하다. 그들은 세금을 들여 진지한 얼굴로 전업주부의 노동력이 어느 만큼의 임금에 해당하는지 계산하여 발표하기도 한다. 국민들은 그와 똑같은 짓을 흉내 내고 있다. 자신의 모든 생애를 걸 만한 가치를 찾지 않고, 금전적인 가치로 선택을 좌지우지한다. 그들에게 일이란 강제된 고역과 비슷한 것이 되어버렸다. 본래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직장에 취직한 대가인 것이다. 독서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암시를 작은 목소리로 말해준다. 어떤 책이 자신에게 해답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다른 사람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혹은 어떤 책이 자신의 타고난 성향에 어울리는가 하는 의미에서 본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준다. 사회 경험이나 타인보다 책이 주는 암시의 힘이 큰 이유는 일반적인 책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서술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과 같은 경제 지상주의 사회에서 매우 희소한 일이다. 책은 경제적 이해득실에서 벗어난 말을 해준다. 그래서 혼자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마음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마음을 여는 각도가 더 커지므로 책이 해주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사회관계에서 억압했던 자신이 나오게 되고, 자신이 무엇을 기뻐하는지,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 명료하게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책이 주는 암시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과 자신을 모른 채 타인을 흉내 내며 그저 공리적인 목적으로만 공부하는 것은 열의와 결과에서 당연히 엄청난 큰 차이를 보인다. 자신을 이해하는 단계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첫걸음이다.
이 책을 읽고 책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본문에도 나와있지만 대중소설이나 자기 계발서와 같이 대중에게 영합하기 위한 책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책은 진실하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한다. 이런 점이 독자의 사고와 관점을 변화시키는 책이 주는 선물인 것 같다. 우정 어린 벗이 가장 좋지만, 책은 그 벗마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해주는 더욱 진실한 벗이다. 더구나 이 벗은 내가 손만 뻗으면 언제든 나를 만나준다. 돈이 모든 것의 척도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나를 만나주고 이야기해주는 진실한 벗에게 지금 당장 손을 뻗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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