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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이야기 - 마가렛 애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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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6,147회 작성일 20-03-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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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녀이야기’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우리나라 소설 ‘하녀’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소설이겠거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막상 한 두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하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먼저, 이 책은 sf소설이다.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내는 유토피아를 상정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디스토피아를 상정하여 그려낸 소설이기 때문에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막장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이 책에서 말하는 시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의 개념이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시녀의 의미는 ‘사령관’의 아이를 낳는 사람, 아이만을 낳기 위한 기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길리아드는 국가를 전복시키고 기독교 원리를 근간으로 하여 세운 가부장제국가이다. 길리아드는 출산율이 최하여서 아이를 생산하는 것이 제일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강제로 ‘시녀’가 되었다. 여성들은 직장과 돈을 제일 먼저 빼앗긴다. 그리고 이름을 빼앗긴다. 사람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그녀는 ‘시녀’로서의 교육을 받고 사령관의 집에 배정이 된다. 사령관은 아내가 있지만, 아내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사령관의 집에는 1명의 시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명의 시녀들이 있다. 이 시녀들의 임무는 바로 사령관의 아이를 낳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일부다처제처럼 남자가 성적인 쾌락을 느끼며 여러 부인들을 거느린다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성적인 쾌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시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령관의 아이를 낳아 비여성을 분류되어 유배되지 않는것이다. 시녀들은 빨간 옷을 입고 모든 생활을 구속당하고 감시당한다. 자유로웠던 과거를 회상하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등장하는 시체는 경각심을 느끼게 한다. 불륜을 저지르면 죽음을 당한다. 그러면 그 시체는 교육적 효과를 위하여 길에 전시가 된다. 결국 주인공은 탈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소설이 상정한 길리아드의 체제가 정말 최악인 이유는 여자의 인권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는 오로지 남자에 의지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아이를 낳는 것만이 희망이라고 하니, 여자라는 성별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이 책이 극단의 가부장주의를 상정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당시의 시대상을 극단으로 드러내면서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온 1984년에 여성인권의 문제는 지금보다 더 아래였을 것이다. 전에도 낮은 출산율에 대한 대책으로 가임지도를 만들어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여성의 신체 구조가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를 낳을지 말지는 그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이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을 떠나서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닌 타고날 때부터 정해진, 개인이 선택할 수도 없는 성별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안된다.  

최근 페미니즘이 중요한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그에 관한 소설, 영화들도 출시되었다. 작가가 페미니즘을 내다보고 이 책을 서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시녀’(여성)으로 대표되어지는 것에 다른 대상을 대치해본다면,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억압당하고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 심각한 비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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