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문제 - C. 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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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는 높은 전염성과 중국 춘절 연휴 기간에 있던 중국인들의 집단 이동으로 인해 단순 바이러스를 넘어 전 세계적인 범유행전염병으로 퍼져가고 있다. 비록 현재까지 보고된 확진자와 사망자를 통해 계산된 코로나19의 잠정 치사율은 3.4% 정도로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높은 전염성으로 인한 감염자 급증과 그러 인한 의료시설의 부재, 심지어는 특정 도시들의 기능이 마비되는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면서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 1월 31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3월 3일 현재 확진자는 전 세계적으로 91,333명을 기록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전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4,812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서 급속도로 퍼지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사이비 종교단체 신천지가 가장 큰 이유로 부각되고 있다. 기독교계 사이비 단체 신천지는 특유의 밀집된 예배의 형태와 공동생활, 각 도시의 신자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특성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 및 전파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다. 또한 신천지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와 신분, 알리바이 등을 숨기는 특성 때문에 감염 경로와 접촉자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신천지의 확장을 방해하려는 악마의 술수라 주장하는 뻔뻔한 모습까지도 보였다.
인터넷 뉴스나 게시판에 들어가면 이러한 신천지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댓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댓글 중에는 신천지 교인들의 행동을 비판하거나 교주 이만희를 비판하는 글도 많았지만, 그 중 가끔 종교 그 자체를 비판하는 글도 찾을 수 있었다. 한 댓글은 신이 만약 존재한다면 왜 신천지와 같은 단체에 벌을 주지 않으며, 선한 국민들이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고통에 신음하게 내버려 두는지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자신은 신을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하필이면 내가 믿는 신은 선하면서도 전지전능한 신이었고, 질문을 본 그 자리에서 명료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
사실 이 질문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신이 선하다면 왜 세상에는 악이 있고 고통이 있는가? 신이 절대적인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왜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행들과 고난들을 본인이 직접 막지 않고 인간에게 그 고통을 겪도록 내버려 두는가? 영국의 신학자이자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는 이러한 질문들을 답하기 위해 '고통의 문제'라는 책을 집필했다. C. 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를 통해 위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바로 주기보다, 먼저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 '악행'이란 무엇인가? '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고통'이란 무엇인가?
먼저 '악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기준, 즉 도덕률이란 존재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도덕률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행위를 선하다, 부합하지 못하는 행위를 악하다고 평가한다. 그럼 이 도덕률이라는 기준은 절대적인가? C. S. 루이스는 인류에게 도덕률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각자에게 정해진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같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일부 사람들은 그 행동을 용납할 수 있고, 일부 사람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 행동이 '나'의 이익이나 손해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그 판단은 더욱더 개인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1조 원 탈세 혐의보다 나에게 빌린 돈 100만 원을 갚지 않은 친구가 더 나쁘게 여겨지듯, 인간의 도덕적인 판단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신'은 절대적인 도덕률, 선함의 기준이 된다. 물론 신이 보여주는 선함과 인간의 선함은 흰색과 검은색과 같은 철저히 다른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상적인 동그라미와 삐뚤빼뚤한 동그라미와 같은 유사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렇다 보니 도덕률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 아닌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죄인이라 평가하고, 선한 하나님을 닮고자 회개하고 노력하면 살아간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자신의 도덕률을 가진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 고통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고통은 악한 것이라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 고통은 도덕적으로는 가치 중립적인 존재이다. 육체적인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 고통을 피하는 행위도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아이에게 자신 저지른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벌이라는 고통을 주어야 한다. 또 우리가 근육을 얻기 위해서는 근섬유가 끊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근육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고통은 때에 따라 우리 자신의 상황과 도덕적 엇나감을 깨닫게 하는 지표가 되어주거나, 고통을 이기어냄으로 성장하는 동력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체벌과 운동으로부터 도망치는 행위를 우리는 결코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고통이 존재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인들은 신이 고통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죄성을 드러나게 하고, 그 고통을 이기어냄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성장시킨다 믿는다. 그래서 고통은 그 자체가 선하냐 악하냐의 문제로 이어지기보다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선함이나 악함이 드러나게 된다.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 때, 어떤 자녀들은 일찍 철이 들어 어른스럽게 세상을 사는 반면, 어떤 자녀들은 집안을 멀리하고 엇나가 비행 청소년이 된다. 이처럼 같은 고통이 올 때, 그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때로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도, 때로는 패망의 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측면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바라볼 때 마음이 참 아프다. 많은 사람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고통이 찾아왔을 때 서로를 향한 혐오로, 남의 고통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욕심으로, 자신의 세력을 앞세울 정치적 수술로 그 고통에 반응하는 것 같다.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를 향한 우리의 반응을 바꿀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국가의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국민들이 하나로 뭉쳐 정부가 해결 못 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간 나라다. 정치인들이 서로를 향한 혐오와 비난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되려 코로나바이러스 종식을 위해 당장은 합심해서 일할 수 있다면...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마스크도 사기 힘들어하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부를 시작한다면... 지금의 고난을 통해 오히려 나라가 하나 되고, 우리가 합심해서 고통의 시기를 이기어냈다는 경험과 앞으로도 위기를 이겨낼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욥기 23장 1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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