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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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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688회 작성일 20-03-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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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입니까

에드윈 루이스 콜



크리스천 남성 네트워크의 창설자인 에드윈 루이스 콜의 ‘남자입니까’ 는 1990년 6월 국내에서 초판이 번역된 고전 크리스천 서적 중 하나이다. 2004 년 이후 추가 인쇄를 멈추었기 때문에, 국내 출판사에서 남아있는 재고를 찾을 수 없었고, 여러 중고 서적 사이트를 뒤져 상태가 꽤나 깨끗하게 보존된 책 한권을 구할 수 있었다. 세 번 정도 정독하고 나서 책의 내용을 정리했다. 어떤 부분은 나에게 적용해야만 하는 부분이었고, 어떤 부분들은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으며, 어떤 부분들은 현대에 적용되기가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자는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고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남자다움, 특히 크리스천으로써의 남자다움, 은 어떤 것들일까.


책의 출발은 남자들이 가장 많이 빠지게 되는 죄로 부터 시작한다. 죄에 대한 옳바른 대면이, 그리고 하나님과의 옳바른 관계가 남자다움의 출발점이라고 여긴다. 현대에는 죄의 기준이 모호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공의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점차 잊혀져가고 단지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설교시간을 가득 메운다. 많은 교회를 돌아다녀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드렸던 대부분의 예배에서도 많은 경우가 그 부분을 강조한다. 죄에 대한 회개와 돌이킴을 얘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따뜻함과 사랑에 대해 훨씬 더 많이 강조한다. 나의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그 따뜻함만에 스스로를 파묻다 보면, 죄에 대한 경각심은 스스르 녹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러했다.


그러다보니 명백히 죄인 것들이 단지 ‘문제’ 로 전락해 버렸다. 복음의 한 측면인 죄를 심판한다는 공의가 근래에 오면서 심리학적으로 포장되어 단순히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문제가 되어 버렸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죄’ 라는 단어를 제거해 버렸다. 죄보다 문제가 더 만만한 이유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단지 그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고, 심리 상담가의 도움을 받고,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하고, 또 고백해야 하며 용서받아야 한다. 이 중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행한 ‘죄’를 있는 그대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대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나가 용서받을 방법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죄가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사고하도록 유혹받아 왔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매” 라는 성경보다는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라고 가르친다. 나 역시 전혀 다르지 않았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조그마한 죄라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는 훨씬 더 큰 죄들을 짓고나서도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 일쑤였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크리스찬으로 산다는 것이 단지 어디선가 절대적인 존재의 위로 만을 얻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의 차이는 죄에 직면했을 때 드러난다고 말한다. 인간의 지혜는 죄를 묻어버리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두둔하고 남을 비방함으로써 죄를 회피하려고 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남자다움’의 의미 중 하나가 나타난다. 우리는 죄를 회피하거나 남에게 덮으려 하지 말고, 죄와 정면 도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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