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역사 - 발터 샤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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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학회에 참석할 기회를 얻어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었다. 태평양의 보호 아래 연중 온화한 날씨를 가진 이 도시의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친절하며 미국 내에서 인종 차별이 가장 적은 지역이다. 겨울의 초입에 떠났음에도 그곳의 날씨는 우리나라의 가을과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사람들이 긍정적이라고 했던 이유를 날씨 하나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부스러지는 햇살을 맞으며 걷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는 장시간 비행의 피로까지 녹였다. 흐드러지는 벚꽃 잎이 날리는 산책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완벽한 기분을 느끼는 중에 어디선가 퀘퀘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거리에 있는 홈리스들이 피우는 대마에서 나오는 냄새였다. 본인의 모든 짐을 욱여 넣은 커다란 카트 옆에 앉은 그들은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괜스레 가방 안에 손을 넣어 지갑과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새하얀 옷을 입고 들뜬 마음으로 거리에 나갔다가 소나기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햇살과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가 주었던 행복감을 쫓아내었다.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와 거리에 앉아 있는 그들 사이의 모순은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주었다.
이러한 괴리감은 미국을 돌아다니는 내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며 발전하는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필연적으로 패배자를 생산해낼 수밖에 없다. ‘자유와 경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에 생산된 피해자들이 눈에 자꾸 밟혔다. 이 체제는 많은 패배자들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늘어나는 부랑자들 때문에 부자들은 자신들만의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울타리를 높게 쌓아 외부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 때문에 죽고 죽이는 설국열차의 꼬리칸과, 우아한 파티를 즐기는 머리칸의 괴리감을 현실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쟁의 비참한 결과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촌과 빈촌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모습들은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
경쟁사회의 승리자들은 울타리와 벽으로 본인들과 패배자들 사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만이었다. 독사에게 발목을 물렸을 때 ‘발목이 물렸으니 손이나 머리는 안전할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사회의 한 영역이 큰 영향을 받았을 때, 다른 부분에서 그것을 묵인한다면 독은 점차 퍼져 나간다.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아서 한 부분이 썩어버리면 다른 부분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는 경쟁사회의 부작용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터져 버렸다. 그곳에는 부촌과 빈촌을 가르는 벽으로 가난의 냄새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던 부자들의 오만함이 있었다. 바이러스는 빈자와 부자를 가리지 않았다. 빈부격차의 벽도 마음껏 넘나들며 중국 우한에서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인간의 유전자에 존재하기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유가증권은 바닥을 향해 돌진했다. 수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했고, 그 사실들은 인터넷을 통해 우리에게 가감없이 알려졌다.
이러한 국가들 중에서도 최소한의 기본의료보장이 되어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는 큰 차이를 보였다. 진료비와 치료비가 수 십에서 수 백만원에 달하는 나라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마트에서는 어떠한 생필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른 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온다는 생각 하에 빈자의 것을 빼앗아 본인들의 배를 불리웠지만, 그러한 비극은 또 다른 비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으로 생각했던 대부분의 국가와 그 시민들은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였고, 죽음의 공포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훌륭한 기본의료보험제도로 그러한 공황 상태를 막을 수는 있었고, 이것은 십여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의료 민영화를 필사적으로 막았던 덕분이다. 코로나 사태는 한 집단이 부작용은 생각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이익과 효율을 추구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적나라한 예시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시한다.
자본주의는 인류가 존재한 이후 가장 효율적이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체제라고 한다. 시간과 노동을 팔아 돈을 벌고, 돈을 번 만큼 자유를 살 수 있다.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이 눈 앞에 아른거려 노동을 자처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체제는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는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자본주의가 붕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불씨를 찾을 수 있었다. 물건에 대한 욕망보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커질 때 자본주의의 톱니바퀴는 더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톱니바퀴가 돌아가지 않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벨탑은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멈춘 톱니바퀴를 다시 돌리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는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이로 인해 톱니바퀴는 미약하게나마 돌아갈 것이고 전 세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듯이 회복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더 큰 화를 부른다. 원인은 결국 빈부격차의 심화와 그로 인해 기본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는 국민의 증가이다. 빈부격차가 극도로 심해지면 결국 저자의 말처럼 전쟁, 혁명, 체제붕괴와 같은 폭력이 수반된 것으로 그 불평등을 좁히게 될 것이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지 않는,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그러한 안전벨트를 각 국가에서 갖추어야 한다. 사회적 안전이 보장될수록 우리는 안정적인 것들만 찾지 않고 조금 더 담대하게 도전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극단적인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언젠간 지금의 역사와 같이 하늘에서 떨어져버릴 것이다. 태양만 쫓다가 하늘에서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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