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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CE -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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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수
댓글 0건 조회 6,271회 작성일 20-04-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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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CE-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이 적은 영어명 JUSTICE : What's the right thing to do 라는 책은 2004년에 우리나라에 발간된, 당시의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팔린 책으로 우리나라의 번역명은 마치 정의에 대한 정의를 묻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방법론적인(영어 부제와 같이)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NEED LAB 선배님들 중에서도 Culture Column의 주제로도 다루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최근의 코로나 사태와 함께, 술자는 처음 읽어보기에 소소한 내용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만한 기존의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것이 정의인가를 고민하게 해주면서 갈등상황에서의 각자의 정의에 대한 접근방법을 고민하게 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윤리서가 이론적인 정의론, 혹은 정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학문적인 관점에서 나열식으로 서술하고 있다면, 이책은 사례중심의 접근법을 가져감으로써 좀 더 쉽게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는 장점을 보여주며, 책이 끌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유명한 철도에 관한 사고 실험이 있는데, 사실 이 사고실험은 이 책에서 처음 소개된 은 아니고, 영국의 여성 윤라학자인 필립퍼풋이 1967년에 제기한 내용이다. 간단히 하면 철도분기점에 서 있는 자신이 맹렬히 달려오는 기차를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철도를 그대로 두명 다섯명이 죽고, 분기점을 조절하여 철도의 방향을 틀면 한명의 목숨을 잃게 된다. 다섯명의 목숨과 분기점을 조절하여 죽게될 한명의 목숨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내용이다. 이 부분은 책에서도 서술되는 공리주의와 맞 닿아 있는 부분이겠지만, 단순히 다섯명의 목숨과 하나의 목숨의 무게를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실험이다. 과거 술자가 봤던 다른 책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있었다.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전진하는 지휘관이 성의 시민까지 처형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목숨의 무게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자신의 딸 한명과, 성 전체의 시민의 목숨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질문을 받은 사람은 섯불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사람한명의 목숨은 모두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는 자신과의 관계에 따라 목숨의 무게는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현실적인 목숨의 무게였다. 철도실험은 어떤가? 일반적으로는 만약 둘중하나를 선택한다면 공리주의 관점에서 다섯명을 살리는 일반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으나, 그 선택을 통해 죽게되는 한명이 분기점에 서 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분기점을 조정하여 그 사람의 목숨을 가져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쉽게 선택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정의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세가지 기준을 제시하는데, 행복, 자유, 미덕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통하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표현되는 공리주의와, 개인의 권리를 더 강조하는 중립적 정의의 관점인 자유주의적 접근, 그리고 미덕으로 표현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을 소개하는데, 책의 내용자체가 사실 정의를 정의한다기 보다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토론을 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기 보다는 어떤 내용이 꼭 옳다기 보다는 정의를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관점에서 서술을 하고 있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기실, 인류가 생존해오는 오래된 역사동안 정의에 대한 정의는 끊임없이 토론되고 논쟁되었으나, 시대별로 계속 변화를 해오고 있고, 현대 서구문명으로 대표되는 소위 자유진영에서는 민주주의에 의한 방식이 현재를 대표하는 정의의 표상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의를 바라보는 몇가지 시각을 통해 한창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신종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신종코로나의 시작은 비록 중국의 발뺌이 있긴하나, 어찌되었든 중국에서 시작이 되었고, 공산진영의 강력한 정부 행정력을 바탕으로 중국에서는 통제와 분리, 공리주의에 입각한 개인의 희생을 통한 집단의 안정을 꽤하면서 신종코로나의 통제를 성공했으며,(현재까지 중국의 발표로는 그렇다) 반대로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한 가치관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몇개나라를 제외하고는 병의 통제에 실패한 모습을 보이며, 신종코로나가 시작된 중국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다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와 행복에 제약을 가한다는 것 자체가 정의에 어긋 나는 것이 될 것이고, 다수의 행복의 입장에서는 한명(혹은 소수의)의 자유와 행복에 제약을 가함으로써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정의가 상충되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집단의 안녕을 위해 공산주의사회와는 사뭇다른 최소한의 제약만을 가하면서 신종코로나의 확산을 저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개인의 일탈이 전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유증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모녀도 있었고, 역시 유증상이 있었음에도 대구에서 온걸 숨기고 병원에 입원하여 병원전체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외국인이 자가격리를 어기고 격리지를 이탈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추가 확진자를 만드는 일도 발생했다. 그들 개인에게는 자신의 자유를 제약을 받음으로써 행복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을 것이었지만, 결국에는 그 일탈이 사회전체의 행복에 제약을 가하는 정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되었다. 정의는 무엇인가? 책에서 말하는 미덕의 조건일 수도 있다. 정의를 추구하는 방향이 사회의 통념상의 미덕에 기준을 두고 자유와 공리를 추구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행복에 대한 제약을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냐라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격리지에서 2주간 가만히 있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을 수도 있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한 공간에게 머무는 2주의 시간이 너무도 불행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공리적 관점에서 개인에게 감내할 수 없을정도의 피해와 제약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어느정도의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모두를 위한 정의가 아닐까?


 코로나 사태뿐만 아니라, 최근 대한민국의 이분법적 정의론도 매우 안타깝다. 개인의 가치관이 디지털이 아니고 아날로그일 것인데, 디지털처럼 이쪽 아니면 저쪽의 가치관으로 상대진영을 거의 음모론적처럼 힐난 하는 부분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의는 무엇인가? 정의는 정의되지 않는다. 정의는 우리가 논의하고 추구해야하는 것이지, 하나의 정의가 절대 선이 되는 순간, 사회는 정체되고 독단과 독선이 지배되지 않을까? 서로 조금씩 물러나, 약간의 손해를 감내하면서 인류의 발전을 위해 한발 전진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그것을 위해 과학을 공부했고, 나를 사랑하고, 주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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