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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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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6,194회 작성일 20-02-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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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어여쁘게 지읍시다.

점점 좁게 점점 좁게, 점점 넓게 점점 넓게... 

(동요,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달팽이. 흔히들 ‘집’이라고 표현하는 나선 무늬의 껍질을 가지고 육상에서 서식하는 연체동물이다. 달팽이는 워낙에 약해서 개미 한 마리에게도 쉽사리 당하고, 이동 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천적으로부터 도망치기도 힘들다.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작은 보상인 것일까. 달팽이는 자기 몸에 집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달팽이는 천적으로부터 공격받는 빈도를 낮출 수 있다. 한 편, 달팽이는 피부 호흡을 하는 동물이라 건조한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이때 껍질 안으로 몸을 숨기면서 피부의 수분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반대로 달팽이는 껍질이 파괴되면 수일 내로 몸이 썩어가며 죽어갈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달팽이가 껍질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사람도 집이 없으면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다. 조세희 작가의 중편 소설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1년 8월 10일 경기도 성남시 구성남에서 일어난 대규모 봉기인 ‘광주대단지사건’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서울의 빈민촌을 정리하면서 당시 살고 있던 10만여 명의 사람들은 살 집을 주겠다는 약속을 믿은 채로 광주대단지(현 성남시 구성남)으로 이주를 했다. 그러나 이주한 땅에는 집 비슷하게 생긴 건물도 없는, 그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주민들은 졸지에 껍질을 잃어버린 달팽이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게다가 이주한 곳은 교통 시설도, 시장 등의 필수 시설도, 일자리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인프라조차 전무한 상황이었다. 결국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하기식 정책을 참지 못한 이주민들은 광주대단지 내의 전역을 휩쓸며 그대로 서울까지 이동하여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분노를 표출한 사건이 광주대단지 사건이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 본문 中

 

소설의 1인칭 서술자인 ‘나’는 가족과 ‘행복동’이라는 빈민촌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도착한,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거주 중인 집을 자진 철거할 것을 명령하는 계고장이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대가로 정부에서 받은 것은 새로 건설하는 아파트의 ‘입주권’이다. 입주권이 있으면 뭘 하겠는가, 입주할 돈이 없는 것을. 행복동 사람들은 결국 입주권을 팔아서 살아갈 방도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민들의 처지를 이용해서 부동산 투기업자들은 더욱 배를 불려간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 그래서 행복동 주민들이 처한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옆에는 법이 있었다.

 

막내딸이었던 ‘영희’는 자신의 몫이었던 입주권을 구매해 간 남자에게 접근한다. ‘내가 고용했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돈을 줄 용의가 있다’라는 말을 듣고 남자의 몸종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집은 부자였다. 재개발 지구의 입주권을 거의 쓸어 담았고 영동 일대의 땅도 상당수 확보해놓았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그에게는 고작 ‘작은 훈련’에 불과했다. 앞으로 아버지의 회사에서 더 큰 일을 하게 될 거라고. 그는 선택할 것이 많은 부유한 삶을 살아왔다. 선택할 것은커녕 그것을 담을 주머니조차 없는 옷을 입으며 살아온 영희와는 씁쓸한 대조를 이룬다. 새벽에 남자가 잠을 자는 틈을 타서 영희는 금고에서 각종 돈과 입주 서류를 들고 도주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굴뚝 아래로 떨어져 돌아가신 아버지의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죽도록 열심히 살았던 난장이는, 그래서 죽었다.

 

“그는 아직까지 한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서도 그는 아는 것이 없다. (...) 

눈물이 또 나의 눈에 내배었다.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 본문 中

 

죽도록 열심히 살아도 입주권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과 위에서 집을 가지고 더 부유해지는 사람이 공존하는 현실은, 오늘날도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의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급기야 2018년 기준 서울 무주택 가구는 50.9%로 집계되었다는 기사가 실린다. 나 같은 난장이들은 복권이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평생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리라. 달팽이 껍질의 나선무늬처럼, 살아가기 위한 길이 점점 좁아져 가는 듯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집 마련이 이리 힘들어서야. 누구는 하나만 있어도 될 집을 여러 채를 가지고 돈을 불려가는데, 반대편의 어느 사람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고시원, 찜질방 등에서 간신히 하루를 연명해가고 있다.

 

달팽이는 껍질이 깨지면 죽는다. 지렁이는 밟으면 꿈틀대기라도 하지만 달팽이는 꿈틀대지도 못한 채 조용히 죽어간다. 그래, 아마도 신음이 들려오지 않으면 아픔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 같다. 과연 이 사회가 껍질을 잃은 민달팽이를 보듬어 줄 길은 정녕 요원한 것일까. 오늘따라 살살 살아도 되는 세상이, 그래서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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