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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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사회에서 완전하게 수용된 것은 아닌 듯 하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이 세운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부합하지 않은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 규정한다. 이는 장애인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어딘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정상이 아니라고 규정된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회의 기준에서 어긋나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은연중에 가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러한 마음가짐이 장애인(뿐 아니라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하여 우월감을 가진 오만한 감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마음의 여유도 있고, 남에게 선함을 연기할 여유도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실수를 하였을 때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이 여유가 있기 때문이고, 이를 저자는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한다. 그러나 내 이익이 침해될 위험이 현저할 때에는 나도 그 쇼를 멈추고 내면의 추악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배려라는 것은 나는 너보다 낫다라는 오만함을 숨긴 퍼포먼스 일 수 있다는 점에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된다.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이 표심을 얻기 위하여 장애아동시설, 보육원 같은 시설에 가서 따뜻하게 그들을 안아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떠올리면 왜 배려를 퍼포먼스라고 일컬을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 하나 하나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하나의 집단으로 기호화하여 연출되는 이 퍼포먼스(배려)가 오히려 이들을 사회에서 실격당한 존재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장애인 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사고방식에 완전하게 공감할 수 있다면 그 배려는 진정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장애를 가진 부부가 결혼을 한 것을 보면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애는 낳지 않겠지?”, “장애를 물려주려고 그러나, 왜 애를 낳으려고 하지?”, “뭐 한다고 결혼을 했지”. 이 책을 읽기 전의 나 역시도 위와 같이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선뜻 저렇게 말하기가 어렵다. 장애를 가진 부부에게도 연애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결혼을 할 수 있고, 아이를 낳고 싶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장애인 부부에게서 만약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부모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사회의 인식, 환경을 개선할 문제이지 장애인 부부가 아이를 낳을 자유를 포기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보다 약한 사람,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에 대하여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사회에서 실격당한 사람들로 치부되는 사람들에 대한 변론이긴 하지만 이를 확장하자면 인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에 대한 외침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인간의 존엄함을 다음과 같이 상기하며 책을 마친다. “따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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