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주례사 - 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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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법륜
오랜만에 책을 집으며, 이 책이 과연 나에게 편안함을 또는 불편함을 줄지. 읽기에 편하다면 나의 마음과 잘 맞는다는 뜻이며, 불편하다면 기존의 나의 생각과 다르다는 뜻이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 기준이 된다는 이 책을 읽으며, 간접적으로나마 27년 동안 나도 모르게 확립된 자아를 되돌아보고자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에 집중하며 종이를 넘겼다.
처음부터 ’따끔‘ 했다. 과연 편안함일까 불편함일까.
스님은 말했다. “70%를 내어 주고 30%를 받아라, 그리고 행복해져라.”
당연한 말이다. 이미 나는 알고 있다. 난 이미 행복하다. 다르게 행복하다. 70%를 받기만 했기 때문이다. 철부지 어린이 마냥 바라고 바라기만 했다. 내가 밑에 있으니 너가 내려오라고, 내가 앞에 있으니 너가 얼른 앞서오라고. 그때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게 부담인줄 몰랐다. 단순히 우린 같은 선상에 있어야 손을 잡을 수 있으니, 서로 맞추자는 의미에서 그러자 했는데 내가 한 건 없었다. 바라기만 했다.
미묘하다. 편하면서 불편했다. 머리는 편한데, 몸이 불편하다. 내 스스로가 모순이였다.
스님은 계속 말했다. "있는 그대로 보아라."
스님의 말처럼 너를 내 마음대로 그리려고 했다. 너 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두를 그렸다. 피카소처럼 그려놓고 모두가 이해해주기를 바랬다.
우린 참 많이 싸웠다. A라는 사건이 나에겐 별일 아니였지만 너에겐 별일이였다. 화내는 너를 보고 난 그냥 서로의 기준이 달라서, 생각이 달라서 그런거라 말하고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조차 강요였고, 욕심이였다. 그 사람이 화났으면 그냥 사과하고 달래주면 된다. 굳이 내 입장을, 기준을 이해시켜주고자 억울하다고 설득했다.
스님은 말했다. "좋고 싫은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때문이다”.
약속시간에 늦는다고 연락이 올 때 나는 화난다. 어쩔땐 괜찮다. 나도 늦게 가고있으니까. 이처럼 너의 행동은 상관없다. 그 때마다 바뀌는 이기적인 내 기준때문에 화내고 때론 다행이라고 생각한것도 나이니깐. 스님의 말처럼,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너는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계속 바뀌었다.
매우 불편했다. 억울했다.
참 억울하다. 너가 화날 땐, 기준을 따지지말고 그 자체를 보고 달래주고 사과해야하는데 내가 하는 행동은 이기적인 내 기준때문에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 알았다. 이게 70프로를 준다는 것이다. 이런게 진정한 배려이고, 성숙한 결혼과 연애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이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고 하지만,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고 하지만 기본은 다 같은것 아니겠나. 축구와도 같지 않을까, 패스를 받으려면 내가 움직여야지. 바라고만 있으면 난 그 해 이적시장에 있을것이다.
스님은 당부했다. "인정해라."
언제였던가 한번은 너와 싸운 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너는 나에게 딱딱하게 이미 굳어버린 시멘트 같다고 했다. 네가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해주어도 나는 듣지 않는다고, 이미 내 마음속으로 다 결정해버리고 행동을 한다고. 너의 조언을 칼과 창으로 간주하고 어떻게든 방어하려고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지식의 조각들로 방패를 조립한다고. 내 나름대로 견고한 방패였고 너를 배려한답시고 도망치지 않고 방패로 애써 막아주며 막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머니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굳었냐고, 대신 굳어버렸을 땐 그 이유를 차분히 잘 설명해주지 않냐고. 답은 “아니”. 가히 충격적이였다. 나름 부모님과 친구들의 창과 칼에 견고하고 튼튼한 방패로 맞섰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나를 사랑해주고 우선시해주는 부모님이였기 때문에, 나와 그저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좋은 친구들이였기 때문에 먼저 창과 칼을 거두었을뿐, 내 방패가 튼튼한 것이 아니였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친구들과 상담도 하며 열을 올려 다시 나를 무르게 하고자 했다. 인정해야했다. 반대로 너가 그랬다면, 너가 딱딱한 시멘트였다면 너가 나중에 굳어진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스님이 누누히 말하듯 내가 70%를 내어주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한다. 스님의 말처럼 '너가 고집이 센대, 그 센 고집을 꺾으려는 나는 얼마나 고집이 셀까' 라고 생각하며 내 조언을 스스로 창과 칼로 만들어선 안된다.
불편하지만 편안하고 싶었다.
결혼을 해보지도 않은 스님의 결혼관을 들으며, 주례사를 듣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어쩌다 반성문이 되었다. 아니 이제 앞으로도 무조건 반성해야 한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약간의 편안함과 불편함이 교차하였지만 확실한 건, 몇 년 뒤에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마치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처음 신었을 때의 딱맞음과 편안함을 반드시 느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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