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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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은 현재까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 중에서 가장 쉽고 직관적인 매체 중 하나이다. 글은 읽고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야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동영상은 이해하는 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어떠한 주제를 이해할 때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체라는 말이다.
2019년 KT 그룹에서 실시한 ‘2019 인터넷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10대 인터넷 이용자 10명 중 7명이 검색 엔진으로 유투브를 이용한다고 한다. 검색 엔진으로 구글이나 네이버를 이용하는 20대 이상의 이용자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유투브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동영상 플랫폼이며, 검색 엔진을 유투브로 이용한다는 말은 궁금한 점을 동영상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말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것은 10대가 글을 읽고 소화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제된 곡물이나 설탕과 같이 GI지수가 높은 음식은 빠른 에너지 흡수를 통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칼로리를 만든다. 마라톤을 뛰는 사람이나 빠르게 혈당을 올려야 하는 당뇨병 환자에게 이러한 단당류의 섭취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밀가루나 설탕을 섭취하게 된다면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게 된다. 단당류를 섭취하자 마자 흡수된다는 것은 소화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점차 감소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영상으로 어떠한 것을 아는 것은 단당류를 섭취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빠르고 쉽게 이해된 것은 당장에는 큰 도움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복잡한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OECD의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사람들의 문해율(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은 25%밖에 안된다고 한다. 즉, 10명 중 7명은 글을 읽고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문맹률이 1%에 가까운 대한민국에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혹자는 책을 읽는 시간에 다른 매체를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대신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영화나 여행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한계가 분명이 존재한다. 어떤 분야를 처음 공부한다고 했을 때 초반에는 여러 매체를 통해서 쉽게 공부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가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매체가 급격하게 감소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정에 대해서 공부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한글로 된 자료나 영상 자료들을 손쉽게 찾아서 빠르게 이해할 수 있지만, 기초적인 것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매체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결국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하여 배우거나 원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심화된 내용을 공부하려면 글로 된 자료를 읽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며, 이것은 우리가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설탕에 익숙해진 소화 기관은 복잡한 구조의 탄수화물을 소화할 수가 없다.
수많은 글의 종류에 대해서, ‘시’는 단언컨대 가장 함축적인 것이다. 시인은 말하고자 하는 수많은 것들을 고작 한 페이지 내에 함축하여 표현한다. 시를 읽었을 때 매우 직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어제 읽은 것과 오늘 읽은 것이 다르고, 다음 날 읽은 것은 또 다르다. 음식으로 따지자면 정제된 설탕이 아니라, 거의 도정되지 않은 현미와 같다. 우리 장기가 끊임없이 운동하여 소화하는 것처럼, 시도 우리 안으로 들어왔을 때 계속해서 곱씹고 소화해야만 온전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화하려고 노력했을 때, 복잡한 것을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읽고, 해석하고, 온전히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어떤 글 읽기보다도 중요하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서기관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41세기에 걸쳐 시대를 넘나드는 유명, 무명 시인들의 시를 엮은 책이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고전의 힘이라고 하였던가. 본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지금 읽어도 울림을 주고, 여러 번 읽어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한 번 보고 버리는 일회용품 따위의 것이 아니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연륜이 더해지는 소리를 내는 악기와 같은 것이다.
(...)
내가 물었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서 건강을 잃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
- <신과의 인터뷰> 中, 작자 미상
특히 ‘시’라는 것은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데에 탁월하다. 가끔씩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길가던 들꽃이 너무 아름답거나, 해질녘의 햇살이 마음을 울린다. 여행 중에 탔던 버스 창틀의 녹슨 부분도 아름답게 느껴지거나 현지인들 속에서 버스를 탈 때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비가 내리는 우산 속에서도 길을 가는 개미의 행렬 속에서도 벅차 오르는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감동을 일반적인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 그 색채가 옅어지면서 그 때의 감동을 전할 수 없게 된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사막>, 오르텅스 블루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때때로 시에서 읽을 수 있다.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시는 매우 효과적이다. 시인들의 고뇌가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시는 그것 자체로 우리에게 치유와 위로를 준다. 류시화 시인은 시집의 해설에서 말한다. “한 편의 좋은 시가 보태지면 세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 좋은 시는 삶의 방식과 의미를 바꿔 높으며,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시는 인간 영혼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그 상처와 깨달음을. 그것이 시가 가진 치유의 힘이다. 우리는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다.”
쉽고 자극적인 컨텐츠들이 즐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부재한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는 독해력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더욱이 나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까지 한다. 코로나 사태로 어쩔 수 없이 집안에서 보내야 하는 이 시기에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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