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불편한 편의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601회 작성일 26-02-23 00:04

본문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지음-


"손님에게 따뜻한 옥수수수염차를 건네는 것은, 그가 지금 얼마나 목이 타는지 혹은 마음이 타는지 알고 있다는 무언의 위로였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은 현대 문명의 상징과도 같다. 모든 것이 규격화되어 있고, 점원과 손님 사이에 불필요한 대화는 생략된다. 우리는 그 빠름과 익명성을 편리함이라 부르며 찬양한다. 하지만 김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제목부터 무엇인가 이질감이 든다. 가장 편리해야 할 공간이 왜 불편할까? 이 역설적인 제목은 책을 읽기 전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에 충분했다. 

소설의 배경인 ‘ALWAYS’ 라는 편의점은 늘 위태롭다. 매출은 바닥이고 점원들은 각자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알코올성 치매로 과거를 잃어버린 노숙자 출신 ‘독고’가 야간 알바생으로 합류하며 고요하던 편의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독고는 흔히 생각하는 유능한 알바생과는 거리가 멀다. 덩치는 곰 같고 말은 어눌하며 행동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하지만 그 불편한 속도가 오히려 손님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된다. 그는 편의점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고단한 하루를 묵묵히 지켜봐 준다. 독고의 이런 투박한 배려는 효율성만을 따지던 공간을 사람 냄새 나는 사랑방으로 탈바꿈시키는 듯 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독고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식이다. 그는 화려한 언변으로 조언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들어줄 뿐이다. 책 속에서 작가는 독고의 입을 빌려 소통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내 옆의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본능적으로 정답을 제시하려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때로 정답보다 중요한 것이 곁을 내어주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공무원 시험에 낙방해 좌절한 청년, 가족에게 소외받는 가장, 까칠한 동료 알바생까지. 그들은 독고가 건넨 '참참참(참깨라면+참치김밥+참이슬)' 세트와 짧은 대화 속에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특히 독고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들에게 무언가 울림을 준다. 남을 돕는 행위가 결국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 된다는 메시지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나는 많은 사람을 편리함의 잣대로 판단해 왔던 것 같다. 나는 편리함과 효율을 극적으로 추구하는 공대 대학원생이다. 솔직하게 내게 도움이 되면 친절하고, 번거롭게 하면 불편한 사람으로 치부해왔다. 기존의 나의 기저엔 편리함을 추구하는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러한 모습의 나는 이기적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기적인 나에게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살지는 않았는지 묻는 듯했다.


"불편한 편의점은 편리함의 시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곳이다."


위 문장처럼 때로는 조금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온기를 확인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 각박한 세상을 버티게 하는 힘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단 한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옥수수수염차 한 병의 따스함을 건넬 수 있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