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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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
- 김신지 작가 -
"한 해를 잘 보낸다는 건, 계절이 지금 보여주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산다는 것"
『제철 행복』은 제목부터 시선을 끄는 책이었다. 처음 이 책을 발견한 곳은 독립서점이었는데, 푸릇푸릇한 표지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소 ‘제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제철 과일이나 제철 음식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제철 행복’이라는 표현은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행복에도 제철이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독특한 제목이 궁금해서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책을 보며 알게 된 것은, 여기서 말하는 ‘제철’이 단순히 사계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24절기를 가리킨다는 점이었다. 그 순간 어릴 적 24절기에 관심이 많아서 순서까지 외우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한때는 절기가 바뀌는 흐름을 재미있게 따라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처음 보는 에세이가 아니라, 어렴풋이 잊고 지냈던 시간 감각을 다시 불러오는 책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24절기마다 어울리는 작고 소박한 기쁨들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는 순간,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 짧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어떤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의 질감 같은 것들이 모두 하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특별한 사건이나 큰 성취를 통해서만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기에만 가능한 것들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충분한 기쁨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봄과 관련된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고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에 봄나물을 이용한 음식을 먹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최근 SNS에서 자주 보였던 봄동 비빔밥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단순히 계절을 탄 하나의 유행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현상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유행처럼 보였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것 역시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완전히 계절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제철 음식을 통해 그 계절만의 기쁨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공감했던 부분은, 요즘 들어 1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낀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계절이 바뀌는 것이 더 분명하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느새 봄이 왔다가 금방 여름이 되고, 또 정신을 차려보면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와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1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작은 순간들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봄의 햇살, 초여름의 냄새, 가을 저녁의 선선한 공기, 겨울 아침의 차가운 분위기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은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지나쳐 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모여 한 계절의 기억을 만들고, 결국 한 해의 감각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는 ‘제철 행복’은 단순히 계절에 맞는 음식을 챙겨 먹는 생활 방식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의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현재의 계절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는 태도에 더 가까워 보였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이미 와 있는 계절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또 이 책을 읽으며,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효율과 속도에 익숙해져 살아가는지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늘 해야 할 일과 앞으로의 계획을 먼저 떠올리다 보니, 지금 눈앞에 있는 계절을 충분히 느끼는 일은 자꾸 뒤로 밀리게 된다. 계절의 변화는 분명 반복되는 것이지만, 사실 똑같은 봄과 여름은 한 번도 오지 않는다. 올해의 봄은 올해만의 봄이고, 지금의 나는 지금 이 계절을 단 한 번만 지나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지나간 뒤에야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일상 속에서 멈춰 서서 계절을 바라보게 하고, 순간의 기쁨을 더 섬세하게 느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계절을 조금 더 의식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봄에는 봄의 맛과 냄새를, 여름에는 여름 특유의 생동감과 짙은 햇살을, 가을에는 서늘한 공기와 깊어지는 풍경을, 겨울에는 차분하고 맑은 분위기를 조금 더 천천히 느껴보고 싶다. 매번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그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을 한 번 먹어보고, 계절의 변화를 눈여겨보고, 잠시 멈추어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밀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무심히 흘려보내고 있던 일상 속에도 계절이 주는 작은 행복이 분명히 스며 있다는 사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삶이 자꾸 단조롭고 반복적으로 느껴질 때일수록, 익숙한 하루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는 특별한 행복만 추구하기보다, 지금 이 계절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을 알아차리는 일이 생각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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