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여신
페이지 정보

본문
녹나무의 여신
- 히가시노 게이고 -
히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여신』은 『녹나무의 파수꾼』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녹나무를 매개로 말과 글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과정에 주목했다면, 『녹나무의 여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를 궁금해한다. 지금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는지, 지금 들이고 있는 시간이 나중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를 알고 싶어 한다. 소설 속 인물들 역시 녹나무를 찾으며 저마다의 사정으로 앞날을 묻고,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운명 앞에서 흔들린다. 이런 모습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감정이다.
나 역시 이런 마음을 종종 느낀다.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분명 적지 않은데, 졸업 이후의 진로나 앞으로의 삶은 좀처럼 선명한 모습으로 잡히지 않을 때가 많다. 해야 할 일은 분명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지금의 노력이 어디로 이어질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그런 불확실성을 단지 막막함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답답함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한 것은 바로 지금이니라. 지금 건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로써 행복한 것이니라.
지금 네가 존재하는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하라.
그리하면 어제의 일이 마음에 걸리지 아니하고 내일의 일 또한 불안하지 않으리라.”
이 문장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늘 현재뿐인데도 정작 마음은 자주 어제와 내일 사이를 오간다는 점이었다. 지나간 일을 오래 붙들고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앞당겨 걱정하다 보면 오늘 해야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 물론 불안이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불안 때문에 지금 주어진 시간을 놓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래를 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미래를 미리 알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을 제대로 감당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지점은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완전하지 않다. 욕심에 흔들리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결함을 단순히 비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 남아 있는 양심과 스스로를 바로잡으려는 마음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녹나무의 여신』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결국은 사람이 어떤 기준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소설로 읽혔다.
이 점은 나에게도 꽤 직접적으로 다가왔는데, 연구를 하며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결과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지를 의식하지 않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으면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기 쉽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떤 태도로 해내고 있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더 나아가 조급함이나 경쟁심 앞에서 내가 지켜야 할 기준을 쉽게 내려놓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과 올바른 태도를 지키는 일은 따로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앞날은 분명하지 않고, 때로는 내가 가는 방향을 다시 의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전보다 조금 더 분명해진 것은 있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미래를 맞이할 현재의 나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는 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당장 뚜렷한 답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내고 내 몫의 태도를 지켜가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나무의 여신』은 단순히 녹나무를 통해 사건이 풀려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를 지나치게 붙들지 않고, 내일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내 몫으로 살아가는 일. 이 책을 읽은 후 나에게 떠오른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확신이 없더라도 오늘 해야 할 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이전글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26.03.15
- 다음글절창 26.03.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