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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쌌던 주유소가 가장 저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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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560회 작성일 26-03-1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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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비쌌던 주유소가 가장 저렴해졌다 ”

- 최지웅 著 「석유 제국의 미래」를 읽고 -

 

요즘엔 어느 한 주유소에만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기름값이 많이 올랐다는 그 요금이 붙은 주유소였는데, 지금은 그 숫자가 가장 저렴한 가격인 아이러니가 펼쳐졌다.

 

2026년 3월, 세계 경제는 다시 한번 한 해협의 이름을 수없이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란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충돌로 인해 중동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 사이의 이 좁은 해협을 통해 이동하는 원유는 전 세계 석유 소비의 약 20%에 달한다. 그리고 이 해협을 둘러싼 중동 지역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30% 이상을 담당하는 곳이다.

 

전기차와 탄소중립이 21세기 이후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언급되었던 것이 무색하게, 이번 전쟁으로 인한 원유 공급의 차질, 그로 인한 국제 경제적 쇼크는 현시대의 모순점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석유 이후의 시대’를 이야기해 왔다. 세계 곳곳에서 앞다투어 친환경 정책이 등장했고, 그에 대한 선두 주자로 전기차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곧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 체제로 넘어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진정한 신뢰가 아닌 세뇌였을까. 이번 전쟁이 드러낸 현실은 조금 달라 보였다. 단지 한 해협의 긴장만으로도 국제 유가는 급등했고, 세계 경제는 곧바로 흔들렸다. 석유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믿음은, 찰나의 현실 앞에서 이상하리만큼 무색해졌다.

 

이러한 요즘 상황에 발맞추어 읽게 된 이 책은, 서두에서 전기차와 탄소중립이 확산되는 시대에도 석유의 지배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산업, 군사, 금융, 그리고 심지어는 국제 정치의 심장부가 얽혀 있는 거대한 체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장면은 역사 속에서도 낯선 일이 아니었다. 1973년 중동 전쟁과 석유 금수 조치는 세계 경제를 큰 혼란에 빠뜨렸고, 1990년 걸프전 역시 국제 유가를 급격히 흔들었다. 중동에서 벌어졌던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세계 경제 정치를 뒤흔드는 사건이 되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석유가 있었다. 전쟁의 명분은 정치와 안보였지만, 그 배경에는 항상 인류의 절대적 권력과도 같은 에너지와 자원의 문제가 놓여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어쩌면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오래된 사회 구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탄소중립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경제는 여전히 석유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기차가 늘어났다고 해도 산업과 물류, 항공, 군사 체계는 아직도 막대한 석유를 필요로 한다. 에너지 체계는 생각보다 훨씬 느리게 변한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곧바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 분야에서의 혁신은, 그 어느 분야의 혁신보다도 느리고 신중히 진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변화가 짧은 시간 안에 완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일지도 모른다.

 

전기차의 보급이 늘고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물류, 항공, 석유화학, 그리고 군사 체계까지 생각해 보면 그 기반은 여전히 석유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말은 쉽게 쓰이지만, 한 세기 동안 구축된 에너지 인프라와 산업 구조가 바뀌는 것은 전혀 쉽지 않다. 결국 우리는 분명 다른 에너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석유의 영향력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전쟁을 바라보며,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 과연 에너지 전환의 과도기인지,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인지 조금 더 차분하게 판단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아마 앞으로도 비슷한 장면은 몇 번 더 반복될지 모른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석유가 세계 경제의 균형을 좌우하는 순간들이 나타날 것이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에너지의 미래를 서둘러 선언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에너지 구조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말해 온 친환경의 미래는 과연 얼마나 현실에 가까워졌는지를 기대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에너지 체계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짊어지고 왔는가에 대한 성찰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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