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스즈키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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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권위의 시대, 진짜를 찾는 ‘오타쿠’의 경쾌한 반란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스즈키 유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명언’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가. SNS의 타임라인을 넘기다 보면, 혹은 카페의 벽면이나 일력의 한 페이지에서 우리는 수많은 위인들의 문장을 마주한다. 하지만 여기, 가족들과의 평범한 식사 자리에서 마주한 홍차 택의 한 구절에 자신의 모든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던진 인물이 있다. 바로 스즈키 유이의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주인공인 괴테 연구자 ‘도이치’이다.
이 소설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장면에서 시작된다. 가족들과 식당에서 후식으로 나온 홍차를 마시던 중, 도이치는 티백 택에 적힌 영어 문장 하나를 발견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 J. W. v. Goethe.
평생 괴테를 연구해 온 권위자 도이치 교수에게 이 문장은 감동이 아닌 ‘결함’으로 다가온다. 그조차 본 적 없는 이 문장의 진위를 추적하기 위해 그는 제자 쓰즈키와 함께 여정을 떠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선 세대와 학문을 넘나드는 지적 수사극으로 변모한다. 사실 말의 정보를 찾는 추리 소설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큰 틀에서 모티브, 사건의 증거들이 치환되어 표현되었다는 것이 글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
작가 스즈키 유이는 2001년생으로, 위키피디아가 탄생한 해에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른들의 말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직접 경험하고 확인하는 태도를 강조해왔다. 이러한 작가의 실제 모습은 소설 속 도이치의 딸, 즉 영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인물에게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전공 지식과 실제 경험을 소설 속 ‘딸’이라는 인물에 녹여냄으로써 작품에 전문성을 부여한다. 문장의 결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딸의 감각은 작가 본인의 영특함을 대변하는 장치다. 2001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치밀한 플롯과 지적 장치를 설계했다는 점은 스즈키 유이라는 작가가 가진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하던데, 추후 다른 작품이 나와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소설의 핵심적인 상징 중 하나는 주인공 도이치와 그의 제자 쓰즈키가 함께 방문하는 ‘잡탕 술집’이다. 이곳에서 내놓는 ‘잡탕 칵테일’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메타포다. 고급 술과 저급 술, 혹은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이 한데 뒤섞인 이 칵테일은, 마치 진짜와 가짜, 고전과 현대의 밈이 뒤섞인 현실 세계의 축소판과 같다.
우리는 고전을 엄숙하고 고결한 ‘하이라키’의 정점에 둔다. 하지만 홍차 택에 걸린 정체불명의 명언처럼, 고전은 이미 대중 소비문화와 뒤섞여 ‘잡탕’이 된 지 오래다. 작가는 이 술집의 분위기와 칵테일을 통해, 견고해 보이는 지식의 하이라키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뒤섞임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우아한 서재가 아닌 북적이는 술집에서 스승과 제자가 괴테를 논하는 모습은, 고전이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질문이어야 함을 역설하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스친 영상은 몇년 전에 보았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였다. 영화 속 주인공이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나기 위해 과거의 파리를 헤매듯, 도이치는 괴테의 흔적을 찾아 현실과 지적 몽상이 교차하는 여정을 떠난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했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도이치 역시 문장 하나를 검증하기 위해 괴테가 살았던 시대의 공기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괴테의 명언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 목소리를 따라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지적 쾌감에 관한 기록이다. 스즈키 유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전공 지식과 세대적 감각을 결합해 고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풀어냈다.
고전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 영리한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믿고 있는 그 '권위'는 진짜입니까?"라고. 무언가에 미쳐본 적 있는 사람, 혹은 당연시되는 세상의 상식에 의문을 던져본 적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통쾌한 응원이 될 것이다. 괴테는 정말 모든 것을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들 사이에서 진짜 괴테의 목소리를 가려내는 것은 결국, 지금 이 순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우리 시대의 영리한 '오타쿠'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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