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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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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467회 작성일 19-12-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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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_ 최진석


"세상에 대한 통제와 영향"




  사람들은 각자 다른 한계의 시선을 가지고 산다. 시선의 높이는 단순하게 환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지식이나 이론 등과 함께 한 사람이 세상에 갖는 통제력과 영향력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나와 상대의 시선이 비슷할 때 서로 공감하게 되고 이는 쾌락의 일부다. 예컨대 사진 촬영과 미술 작품의 관람이 즐겁다면 이러한 행위와 내 시선의 높이가 같은 것이다. 내가 즐기는 것과 좋아하는 장소 등은 이처럼 개인의 시선을 드러내기에 나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세계는 문명과 자연 둘로 나뉜다. 인간이 만든 세계인 문명과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지식과 이론을 통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지식과 이론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방법론으로 묶여 소위 ‘학문’으로 규정되어 왔다. 철학은 이들 중 세계를 다루는 가장 탁월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선진국들은 공통적으로 철학적인 시선 높이를 사유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철학의 내용이 손자병법에 전해지는 전술이라면, 철학적 시선은 이를 활용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전술적 차원을 넘어 전략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은 구성된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판을 짜고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선진국이 중진국 혹은 후진국과 구별되는 포인트다.

 

   하이데거는 "현대의 인간은 세상의 잡담과 호기심에 끌려다니며 맹목적으로 유행과 첨단에 몰입한다“고 했다. 잡담과 호기심에는 타인과 사태에 대한 진정한 이해나 관심이 목적이 아닌 애매하고 무책임한 추측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진정한 방식이 흐려져 있는 것이 애매성이다. 일류는 이러한 잡담, 호기심, 애매성과 같은 비본래적 존재양식을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데, 그 원천은 '뚜렷함'이다. 한 개인이든 국가든 일류의 철학 안에는 뚜렷한 방향성이 있는데, 바로 현존재의 비본래성으로부터 본래성으로의 이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찾는 것이다.

 

   즉 개인이든 국가든 철학적인 높이로 도약하려면 반드시 전면적인 부정이 필요하다. 전략적인 높이에서 고유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로드맵을 직접 그리며 '새로운 생성'을 기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존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즉 종속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는 '각성'이 필요하다.

 

   개인의 차원에서 탁월함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지 혹은 잡담에 빠져 있는지. 나는 자유로운 상태인지. 내가 지닌 것으로 나를 어필하는 것, 기능적 차원에서만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하는 이는 한 인간으로서 매우 비루한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 이름으로써 국가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한다. 국가는 인간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단위이고, 자신의 안녕을 위해 의존해야하는 대상이기에 매우 중요한 틀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전략적인 위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시선이 향상되어야 하는가, 혹은 뛰어난 소수의 견인이 중요한가? 전자라면 개개인의 시선 향상이 국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반대로 후자라면 탁월한 인재의 등장을 위해 우연성에 의존해야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한편 탁월함의 위치에 오른 선진국에 의해 종속적으로 발생하는 부조리, 폭력 혹은 갈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또 이러한 시선에 도달하지 못한 중진국, 후진국의 입장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방향을 잡는데 좋은 도움이 됐다.

덧으로 인간이 잡담, 호기심에 흔들린다는 하이데거의 말에 다시 한 번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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