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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 김영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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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지희
댓글 0건 조회 5,715회 작성일 20-01-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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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김영현 저


 

2019년은 입사 후 나에게 가장 큰 변화가 있는 한해였다. 학기 시작하기 전에는 평생 한두 번 정도 와봤던 대전을 매주 오가게 되었고, 학기 중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과제를 중심으로 주말 스케줄이 짜였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매달 책을 한권 읽고 독후감을 쓰는 랩실 과제였다. 사실 책을 읽을 때 제일 고민은 것은 ‘뭐 읽지?’이다. 아침 상을 치움과 동시에 점심엔 뭐 먹지? 고민하는 주부처럼 이 달의 독후감을 쓰고 나면 ‘다음 달엔 뭐 읽지?’ 하고 고민하곤 한다. 어떤 달은 주변의 추천이나 도서관에 가서 맘에 드는 책을 골라 들거나 해서 어렵지 않게 정한다. 어떤 달은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쓰고도 했다. 그래도 고르지 못했을 땐 괜히 인터넷서점 홈페이지를 들어가보기도 한다. 요새 베스트 셀러는 무엇인지, 신간은 뭐가 나왔는지…… 그러던 중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재미있는 기획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하여 ‘통곡의 리스트’


http://www.kyobobook.co.kr/eventRenewal/eventViewByPid.laf?eventPid=38372&classGb=KOR&PRE=Y&orderClick=LCF


교보문고 MD가 매출 하락에 스트레스 받다가 기획한 이벤트인데 지난 2019년 매출이 저조한 책(이지만 홍보를 잘 했다면 좀 더 잘 팔 수 있었던 책) 100권을 모아 만든 리스트이다. 기획이 재미있기도 하고 책은 좋은데 홍보가 부족해서 덜 팔린 것 같다는 교보문고 MD의 미련에 마음이 동하여 나는 이 책 중에 한권을 읽어보기로 했다.

내가 골랐던 책은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제목도 길고 독특 했지만 교보문고MD가 추천한 추천사가 마음에 들었다.


‘웨일북 출판사는 신인 작가를 참 잘 발굴해낸다. 직업사를 통해 인류사를 관통하는 이 책은 한 번 붙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다. 재미있다.’


 이 책은 컨셉이 독특하다. 과거, 현재, 미래의 3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에서는 그 사대의 직업을 가진 직업인의 평범한 하루를 체험해본다. 그 하루 이후에는 한두 장 정도 짧게 역사적 근거와 해설도 덧붙인다.


책 서두에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덧붙였는데 그 부분이 인상깊어 가져와본다.


‘사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모든 인간의 하루가 궁금했고, 가능하다면 몸소 체험해 보고 싶었다. 과거 뿐 아니라 현재, 그리고 머나먼 미래까지도. 하지만 그러한 책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래서 내가 쓰기로 했다.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말이 맞았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한다.”’


그래서 그런지 보면서 사회 문화 인문서 이기도 하면서 어떤 책보다도 소설 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역사서의 입문으로도 좋아 보였고, 미래 파트에서는 미래를 예견하는 SF 공상과학소설 같기도 했다. 사회 문학 인문서라고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회 속 한가지 현상에 집중하다 보면 그 연구의 결과물은 사회 전체를 담게 된다. 이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어떤 것을 먹으면서 사는지 보여준 ‘헝그리 플래닛’이란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음식을 매개로 전 세계 사람들이 무엇을 먹으며 어떤 사회를 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 책은 음식을 매개로 그때 그곳의 사회, 문화를 선명하게 드러냈고, 이 책은 그때 그 시절 필요했지만 어쩌면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 그 매개였다.

다른 인문서 책과 차별성이 있는 부분은 소설적 상상력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역사로 기록되기 이전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체험과, 현재에 있으나 너무 평범하여 역사로 기록되지는 않는 하루, 아직 기록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드러나있다. 그리고 짧은 분량 안에 직업인의 성격과 생각을 담아내어 마치 그 사람이 직접 쓴 수필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좋았던 과거 편 농부의 밤 (P. 26)

‘어느덧 하늘의 별들이 볍씨처럼 밝게 빛난다. 나는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나 참으로 아름답다. 숨을 들이마시고 뱉는다. 하얀 입김이 하늘 위로 뿌옇게 올라간다. 몸에는 더 이상 감각이 없다. 괜찮다. 따뜻한 죽 한 그릇이면 금세 돌아올 것이다.’


고대 농부가 느꼈던 하늘에 대한 경의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고된 노동 후에도 볍씨처럼 아름다운 별을 바라본다는 것이 숭고하다고 느껴졌다. 중세 시대 페스트에 대항하는 의사 편도 좋았다. 의사 본인도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페스트에 감염된 환자를 외면하지 못한다. 개인의 갈등과 의사로서의 직업정신을 고민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마지막에는 페스트의 숙주인 벼룩을 잡는 부분의 소설적 장치도 재미있었다.


이 책의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별일 없는 하루에 시선을 맞추는 작가의 생각이었다. 과거부터 미래의 직업인들을 상상하며 써낸 이 글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가 기록되어 있다. 특별한 일도 없이 하루 종일 고되게 일했던 하루, 평범하고 시시해서 쓸 것이 없는 하루인데 작가는 그 하루에 시선을 맞추고 그것을 기록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특별한 일 없는 그런 하루하루가 다져져 이 사회를 만들고 이 문화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유럽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아름다운 신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조금씩 돌을 실어 나르는 평범하고 고된 하루가 있었을 것이다. 매일 똑같은 도시의 아침 그 이면에는 매일 그 도시를 청소하는 자의 고된 하루가 있었을 것이다. 특별한 발명도, 빛나는 연구 실적도 사실은 하루하루 step을 밟아나가는, 고되지만 평범한 하루가 만든 것이다. 조금은 벅찼을, 하지만 평범한 오늘 하루도 멀리서 보면 없어선 안되는 소중한 하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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