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루왁인간 – 강한빛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838회 작성일 20-02-08 15:57

본문

루왁인간 – 강한빛

 

이규섭

 

연초부터 더러운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함에 심심한 사과의 말을 먼저 올린다. 더러운 것들의 대표주자는 누가 뭐래도 똥이다. 똥.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의 결과임에도 말하는 내가 벌써 민망하고 미안스러운 까닭은 무엇일까? 단어만 들었는데도 유쾌하지 못하다. 불편하고, 비위가 상한다. 독자를 위해서라도 소설에서와 같은 생생한 묘사는 그만두는 게 좋을 듯싶다.

루왁 커피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고급 커피의 한 종류다. 인도네시아가 주 생산지인 이 커피는 커피체리만 먹인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 남은 원두를 이용하여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소화과정에서 원두가 발효되어 생두에서는 맛볼 수 없는 향을 지닌다고 한다. 누군가는 발효의 효과보다는 사향고양이가 좋은 원두를 골라 먹기 때문에 좋은 품질을 지니는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니 정확한 것은 어른들의 사정으로 판단을 유보하기로 하자. 처음 들은 사람들은 별걸 다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한 잔 가져다 놓으면 ‘고급’이라는 이미지에 기꺼이 한번 시도하게 되는 그런 음료다. 동물의 배설물을 먹는다는 끔찍한 발상과 품격있는 분위기 속에서의 향긋한 커피 한잔. 강렬한 대비가 공존하는 특이한 음료인 것만은 분명하다.


소설 ‘루왁인간’은 이 끔찍한 발상을 더 끔찍하게 만들었다. 루왁커피를 생산할 수 있게 된 중년 남성의 이야기다. 종합상사에서 근무하는 정차식은 수주 실수로 로스팅된 커피를 거래했다가, 배송 도중 가스가 찬 커피 화물이 폭발하면서 회사에서 크게 깨지고 만다. 사장의 막무가내식 비인도적 화풀이에 차식은 곧바로 순응하며 커피체리를 통째로 집어 먹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서 그는 언제나 같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닫고,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 동석에게 찾아간다. 최고급 품질의 커피라는 판정을 받자 그는 동석에게 야생루왁이라고만 출처를 밝힌 채 고가에 독점 납품하며 부수입을 거둔다. 그렇게 그는 전용 화장실까지 만들어가며 커피를 생산하고, 한없이 비참했던 인생은 조금씩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차식은 실패한 사람이다. 적어도 본인은 그 사실을 확신했다. 세상은 부조리하나 그는 이제는 세상에 대항하지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모진 인생에 지친 그는 이미 고개를 숙이는 데 익숙해져 버린 지 오래다. 강자의 비위를 맞추고, 입장이 유리해지면 미친 사람처럼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는 전형적인 상사맨이 되었다. 병가지상사를 내세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는 사장부터, 이 나이에 과장을 달고 있는 자신을 보는 동료들의 시선, 현실적인 ‘가족’다움을 갖추게 되어버린 가정, ‘빵셔틀’이었던 동석과의 관계까지. 세상은 이해하기 어렵고, 모순덩어리지만 그래도 잘 굴러간다. 언제나 성실했고, 야심에 넘쳤던 젊은 시절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고심 끝에 시작한 벤처는 생각과는 다른 과정이었고, 동업자의 배신으로 채권자들에게 쫓기는 나날은 그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원천 기술은 대기업에 헐값에 넘기고, 그나마 전공을 살려 다단계 회사의 연구원을 전전하다가 겨우 상사에 취업해서 자리를 잡았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는 더 이상 젊은 날의 그가 아니었다. 정차식의 혈기와 생기는 인생이라는 소화기관에 모두 흡수되고, 남자는 이제 그 잔여물만 남은 마치 똥 덩어리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느 날 그러한 자신의 배설물이 최고급 커피란다. 사람들이 마시고는 환호를 한다. 동석의 가게는 날로 번창하고, 세계적인 브루어가 그의 커피에 감탄한다.

그에게 세상은 코미디다. 본디 그는 회사에서는 대갈일성이라는 별명으로 언성을 높이고 육두문자를 날리는 불같은 성격을 연기하지만, 집에서는 용변을 보는 소리와 냄새가 부끄러워 물을 틀고 일을 보는 소심한 남자다. 빵셔틀이나 하며 교실 구석에서 꾀죄죄하게 있던 동석은 이제 차식에게 더없이 당당하고, 때때로 창업 조언을 건네는 모습은 낯설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커피 납품으로 차식이 강하게 밀어붙이자 다시금 비굴한 본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쉬이 찾아온 행운은 어이없게 떠나가는 법이다. 차식은 커피에서 인간의 상피세포가 나오면서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다. 어이없게도 신고자는 커피가게 알바생이었고, 이유는 동석이 최저시급을 챙겨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식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세균 검출량이 유무죄의 판단 기준이었기 때문이었고, 그가 최고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들이 노력이 생산자로써의 도덕적 사회적 의무에 충실했다고 정상참작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똥냄새조차 부끄러워하던 사람이었지만,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었고, 발각된 이후에는 루왁남 이라 불리며 사회적으로 말살되었다. 회사에서는 해고당했고, 잠시나마 그를 받아들였던 가족들은 그를 버리고 금식기도원으로 도망갔다. 루왁커피를 판다고 할 때는 야생동물 보호를 외치며 그를 비난했던 단체는, 사건 이후 인도적인 방식을 실험한 모범적 사례라며 찬양했다. 이 엽기적인 사건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영역에 걸쳐 갈등의 요인으로 소모되었다.

차식은 결국 대장암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시한부 선고를 받아, 호스피스에서 용변을 보다가 죽는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낸 것은 더 이상 커피의 향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똥 싸다가 죽는다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현대인들에게 비참한 최후보다 끔찍한 건 우스운 최후다. 우리는 시선 속에서 자신을 감추기 급급하다. 하지만 우리가 정녕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은 갖은 변명으로 포장하면서, 당연한 생리 현상을 부끄러워하는 현실에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몸에서 나온 것의 냄새임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재래식 화장실의 악취는 고약하다. 저런 걸 배에 한가득 담고 사는 주제에 다들 겉으로는 얼마나 향기로운 척, 고상한 척, 점잖은 척하며 살아가는가. 자기 몸에서 나온 분비물을 비정하게 떨어낸 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씻고 비데를 쓰는 모습 또한 얼마나 위선적인가. “화장실 다녀올게.” “손 좀 씻고 올게.” “잠깐 실례.” 왜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드는 사람이 앞에 있을수록 우리는 똥 싸고 온다는 말을 당당하게 못할까. 오늘도 낮은 곳에서 모든 더러움을 혼자 끌어안고 중력에 순종에 똥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항문. 이에 감사와 존중을 표현하기는커녕 쌍소리에 쓰는 인간의 이기심’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차식은 욕지기가 치밀어오를 지경이었다. 정말 똥 같은 이야기다. 위선에 대해 생각하던 차식은 어쩌면 그동안 만인을 기만해온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이 암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에서-

 

차식의 생각처럼 사람은 누구든 배설한다. 질색팔색을 하며 더럽다는 것을 누구든 몸에서 배출하고는 언제 자신의 몸에 있었냐는 듯이 흘려보내고, 다시금 고상을 떤다. 우리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이 우리의 본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더러운 것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더러운 것, 우리의 삶과 문화를 부식시키는 각종 병균과 바이러스들은 어떤 냄새도 없이 오히려 당당히 거리를 활보한다. 벗어 던질 수 없는 자신의 일부에 뭘 그리 연연하는가. 그것을 열심히 숨기는 것이 또 다른 죄를 낳고, 그것을 빌미로 더 없을 죄를 거리낌 없이 행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위선이나 위악이나 다 자신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는 자들의 어깃장에 불과하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을 뺀 잔여물은 분명 분명 배설물의 악취를 뿜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악취를 인정 할 수 있어야 한다. 

화장실에서 삶을 마감한 차식의 배설물은 더 이상 루왁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무엇이 정말 더러운 것인지. 그 판단 착오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순적인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는지 돌이켜볼 일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