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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요시카와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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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667회 작성일 19-11-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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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요시카와 에이지

이규섭


그 출처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자와는 언쟁을 벌이지 말라.’는 말도 많이 떠돌아다닌다. 전략과 중상모략으로 가득한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농담이 생겨난 걸까? 삼국지는 후한 말에서 위진남북조시대 사이를 잇는 혼란스러운 시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제와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삼국지 통속 연의’라는 꽤 많은 부분이 가공된 소설에 기반하고 있다. 요기카와 에이지의 평역본은 그 연의의 평역본 중 가장 다양한 삼국지 저서에 영향을 끼친 책들 중 하나다. 유비가 어머니를 드리기 위한 찻잎을 구하러 가는 장면이나 초선이 연환계 이후에 자살한 이야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세세한 이야기들이 요시카와 에이지 본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다. 약 1800년 전의 이야기 속 진실들을, 독자는 승자의 역사인 정사를 기반으로 추론할 것인지, 아니면 민담과 설화를 기반으로 추론할 것인지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


삼국지가 매력적인 이유는 모두가 좋아하는 영웅담이라는데 있다. 통쾌한 영웅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먹혀주는’ 시나리오였다. 난관을 극복하는 주인공의 서사는 많고 많지만, 난세를 바로잡는 군웅의 모습은 그 정점에 있다. 조조를 평한 허소의 ‘치세에는 간적이요, 난세에는 영웅’이라는 말은 이러한 삼국지의 양상을 암시한다. 독자는 위, 촉, 오의 수장인 조조, 유비, 손권이라는 군웅을 중심에 두고 삼국지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그들이 혼란스러운 시대 앞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보면서 누가 패자가 될 것인지를 들여다본다. 언젠가 유비와 조조의 리더십을 다룬 글들이 잔뜩 돌아다닌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일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관우, 장비, 여포 등과 같이 강하고 용맹하거나, 제갈량과 사마의 등과 같이 지모가 출중한 자가 누구인지 보면서 그 우열을 가리게 된다. 독자는 이러한 뛰어난 자들, 하늘이 내린 인재들의 대결에서 어떤 자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지에 관심을 두게 된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삼국지는 현대인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이야기로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삼국지의 결말이 다가오면서 독자와 함께한 영웅들은 하나둘 스러져 간다. 영웅도 세월 앞에서는 유한한 인간일 뿐이다. 어느 한 편에 서서 바라본 이러한 흐름은 그 수많은 노력과 역경이 모두 부질없는 것과 같고 누구 하나 자신의 포부를 이루지 못한 비극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삼국의 통일은 모두가 아는 대로 위, 촉, 오 어느 나라도 아닌 사마 가문의 진나라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 ‘오장원에 지는 별’을 보고 허무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렇기에 삼국지의 진짜 매력은 창작 소설을 압도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타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난세의 혼돈은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더 다채로운 삶을 살게 만든다. 보통이라면 살면서 겨우 몇 번 마주하는 결정적인 운명의 순간들이 이들에겐 수시로 일어난다. 다양한 성품과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 저마다의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성향을 가짐에도 다른 결말을, 다른 성향을 가짐에도 결국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여포는 주군을 계속 바꾸다가 처형을 당하지만, 가후는 더 많은 주군을 갈아타며 모심에도 가장 오랫동안 그 능력을 발휘하며 살았다. 직언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결과가 좋지 않기 마련이지만 공융은 일족이 처형당한 반면, 우번은 오랜 시간 동안 본인의 임무를 다하였다. 종요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지녔던 종회와 별볼일 없는 농부에서 최고직까지 오른 등애는 둘 모두 촉한의 멸망에 기여하였으나, 둘 다 반역을 꾀하다 처형당했다. 오만하거나 괴팍했던 인물들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 쉬이 예상할 수 있지만, 인품의 상징과도 같았던 유우 역시 공손찬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 밖에도 전예나 하제와 같이 아주 흥미로운 인물들임에도, 삼국 사이의 전투가 아닌 내란이나 외적의 침입을 막아낸 공이 커서, 이야기의 초점에서 벗어나게 된 인물들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엑스트라처럼 스쳐 지나간 이들은 사실 당대의 학자이고, 별볼일 없는 졸개처럼 쉬이 전장에 스러지는 이들이 주요 공직자들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들이 이야기를 빼곡히 메우고 있다.


그러니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영웅의 죽음과 세력의 변화는 하나의 흐름일 뿐 그 자체가 결론이 되지 않는다. 저마다의 시선에서 저마다의 뜻을 품고 혼돈의 세상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낸 자들의 이야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각의 인물에 나를 대입해보고, 그들이 역사 속에서 실제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때때로 놀라운 깨달음을 주는 즐거운 일이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런 선택은 우유부단했을까? 아니면 너무 섣부른 것이었을까? 너무 오만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겸손을 가장한 기회의 상실이었을까? 과감한 결단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손실을 볼 뿐인 감정적인 대응이었을 뿐일까? 생각보다 입체적이었던 인물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유심히 살펴보고, 그 상황에 몰입해 보면 결과론적인 시선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저마다의 흔적을 남긴 수 백명의 인물들로부터 하나하나 인생을 사는 법을 배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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