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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이펙트 – 프랜시스 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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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081회 작성일 19-12-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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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이펙트 – 프랜시스 윈

 

이규섭

 

*본교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는 지난 13일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 결과를 거시경제학의 측면에서 풀이한 해설 강연을 제공했다. 아래의 내용 중 일부는 해당 강연을 토대로 이해한 내용 중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더 쉬운 표현으로 정리한 것이다. 비전문가인 필자가 사견을 넣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왜곡되었을 수 있음에 양해를 구한다.

 

2019년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은 기존 경제학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던 빼어난 통찰력을 가진 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들의 업적은 빈곤한 이들을 “위한” 경제학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장식되었다.

거시경제학은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큰 규모의 주체들 사이의 상관 관계로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으로, 각 주체는 그 주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객체들의 평균적 특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대변된다. 거시경제학에서는 GDP를 기반으로 한 국가의 생산성 지표를 경제성장이론을 바탕으로 해석하여 시장을 파악하고, 예측한다. 그리고 최근까지 경제성장이론은 Solow-swan growth model을 따른다고 여겨져 왔다. Solow-swan model의 큰 매력 중 하나는 모든 국가의 성장률이 동등하게 수렴할 것이라고 예측된다는 데에 있다. 자본의 투입이 늘어날수록 생산량의 증가분이 체감되어 결국 정상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국가간의 격차도 장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olow-swan model에는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모델이 제시하는 바와는 다르게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체감하지 않고 있으며, 부국과 빈국사이의 격차가 쉬이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국과 빈국의 격차가 수렴할 것이라는 핑크빛 미래가 없다면 그저 내버려 두었던 문제들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다시금 불완전해진 이 모델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모델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Solow-swan growth model은 네 가지의 argument가 충족되었을 경우를 기본 가정으로 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Standard representation argument다. 모든 국가의 생산성은 aggregate production function의 형태로 기술되며, 이때 변수를 제외한 계수와 상수들은 서로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거의 동일한 값을 가진 다는 것이다. 이는 거시 경제학의 관점에서 아주 고마운 일인데, 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국가의 자본, 노동력, 기술력에 따라 해당 국가의 생산성 합계 지표를 쉬이 도출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바네르지, 뒤플로, 크레이머는 현대 거시경제의 근간을 차지하는 이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자본 투입, 기술 진보, 인적 자본으로 표현되는 기존의 실질 GDP 산출 방식이 빈국의 기술 수준을 심하게 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빈국의 경제를 반영할 수 있는 모델을 연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서 얻은 데이터를 통해 모델이 도출해낸 빈국의 평균적인 지표와 그 현실 사이의 괴리를 확인하였고, 빈국에는 이러한 차이를 일으키는 요소들이 여럿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낮은 교육수준, 위생상태, 질병, 정치 상황, 시스템의 부재, 치안 문제 등 수많은 문제점이 얽히고 설켜 때로는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면서 무엇이 근본적인 원인인지를 알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요소들의 correlation을 분리해내는 방식을 고안했다. 본래 의학에서 활용되던 RCTs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기법을 적용하여 얽혀있는 요소들 중 어떤 요소가 성장을 저해하는지 하나씩 분리해낸 것은 그들의 대표적 성과 중 하나였다. 그들은 기존 거시 경제학이 aggregation의 형태로 이루어진 방향이었다면, 빈국에 접근하는 경제학의 방식은 disaggregation에 기반해야 함을 보였다. 기존의 경제학이 다루지 못하던.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비로 살아가는 사람들. 평균의 함정 때문에 사각에 가리워져 있던 삶을 반영할 새로운 경제학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들을 시작으로 빈국의 상황들을 조사하고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빈국을 위한 경제학은 현장 중심의 연구이기에 그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앞으로 이를 바탕으로 경제 모델이 만들어 질 것이고, 그리고 난 뒤에는 그들을 위한 각종 정책들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지만, 우리의 세계는 아직도 국가 안에 갇혀있고, 우리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들만의 세계. 있는 자들만의 세계다. 우리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정보가 얼마나 적은 선진국가들에 한정되어 있는지 떠올려 보자. 부국과 빈국의 문제는 마치 개인간 부의 양극화와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선진국의 시민에게 빈국의 문제는 계산될 뿐, 체감되지 않는다. 모순적이게도 부의 재분배는 부를 더 많이 움켜쥐고 있는 선진국에서 더 많이 논의된다. 우리가 부르짖는 부의 재분배는 사실 우리들 사이의 분배다. 국가내 자본의 대부분을 소수의 부자들이 가진 것처럼, 세계의 부 역시 소수의 국가들이 배에 두르고 있다. 우리는 그런 국가 안에서 공평함과 공정함을 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나눠지길 바라는 것들을 진정 모두에게 나누었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받기보다 오히려 내놓아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편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은 부인할 수 없다. 물리학자들이 뉴턴의 고전 역학을 쉬이 버리지 못했듯, 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쉬이 놓지 못한다. 하지만 복잡한 것 앞에서 유독 약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저 순리에 맡겨서, 놔두면 알아서 해결되기를 바라는 안일한 마음은 격동의 시기에 가려져 있을 땐 모르지만 정상상태를 찾아가는 정체된 시기엔 스스로를 좀 먹는다.

세상은 아직도 본능에 충실한 자들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욕망에 기반한 그들의 강한 원동력은 큰 파급력을 가지고 많은 이들의 삶의 양식을 바꾼다. 허나 이들이 자신의 발판조차 보지 못하고 앞으로 한발짝 더 달려가기에 급급한 동안에도, 누군가는 한 발 물러서 더 큰 시야로 바라본다. 자본주의는 내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점점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의 요소에서 개개인의 행동을 본능에만 맡기어 두면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음을 느끼고 있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자본가와 노동자로 이분화된 또 다른 형태의 계급사회의 모습에서 심각한 모순을 발견하고, 당시 경제 체제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내용을 정리하여 자본론을 출판했다. 그는 당시의 경제 체계를 자본주의 시대라 부르며, 생산의 주체가 되는 노동자 계급과 이들을 통해 자본을 벌어들이는 자본가를 나누어 시대의 부조리를 분석하였다. 


... 자본에게는 상품가격을 싸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그렇게 상품가격을 싸게 함으로써 노동자를 싸게 만들기 위해서, 노동생산성을 증대하려는 내적 동기와 지속적인 경향이 있다. ...


… 기계가 최종 결과물에 대해 잉여가치를 더 이상 추가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본가는 이윤을 두 배 이상 빨리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기계를 다루는 사람의 노동시간을 가급적 늘려서 보다 많은 시간 동안 기계가 움직이도록 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가지게 된다.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는 이러한 자본가의 요구 앞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저항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기계를 통한 공장의 생산 자동화로 인해, 마르크스가 말한 실업자들로 채워지는 “산업 예비군”이 만들어 짐으로써 직장을 얻으려는 경쟁이 보다 격화 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잉여집단은 산업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물일 분 아니라 “착취에 언제든 동원될 수 있는 인간자원의 집단이 마련된다는 점”에서(결과가 아닌 원인으로서) 자본가의 자본 축적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


…  자본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를 ‘비참하게 만들고’ 빈곤에 처하게 한다. 뭔가 좀 안다고 하는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이 문장을 자본주의의 번영이란 노동자의 임금을 절대적 수준으로 깎아내리고 그 생활 수준을 하향조정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뜻으로 읽어왔다. 그래서 이들은 마르크스의 논리를 이런식으로 아주 쉽게 조롱했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생활을좀 보라고. 차도 있고 전자레인지도 가지고 있잖아? 어째서 저들이 가난하고 비참한가?”…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임금의 절대적 하락이 아니라 ‘상대적 하락’이 일어나게 된다는 점이었다. … 잉여가치 20퍼센트의 증가를 누리고 있는 그 어떤 기업도 임금 20퍼센트 인상이라는 방식으로 그것을 노동자에게 몽땅 내주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는 정도에 비례해서 보자면, 노동자는 그의 임금이 높든 낮든 결국에는 보다 악화된 상황에 처하게 된다.” … 노동자가 아무리 많은 자동차와 전자레인지를 가질 수 있다고 해도 노동자는 자본가에 비해 날이 갈수록 뒤처질 수 밖에 없다. …


… 자본론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은 이책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고,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교육받은 엘리트는 이 책을 읽으려고 들지 않았다. …


- 본문 중에서 -


그의 주장에 여러 비판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영향력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내세운 사람 중 하나임에도 경제학과 현대 자본주의에 누구보다 기여한 사람이다. 종래에 가난의 원인이 개인의 경제활동양상에 있다는 고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사회적 책임과 분배에 대한 의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현대 자본주의가 자리잡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당시의 현실을 어떤 통찰력으로 바라보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가 야기한 수많은 문제들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내제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 시작점을 살았던 그의 비판을 다시금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그 안에서 시대의 부조리를 향해 좀 더 날카로은 비판을 할 줄 알았던 그 정신을 배워야 한다.

어려운 일이고, 그렇기에 온전히 타파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마르크스가 그러했듯이 때로는 그 결과가 어설프고 불완전한 대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벽치 못한 그의 저서가, 그의 주장이 우리 삶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보라. 우리의 움직임은 하나의 움직임에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바라보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기대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안주하는 삶보다는 훨씬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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